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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이사람] 김창묵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

2019년 02월 23일(토)     김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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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석꾼 집안의 몰락, 자수성가로 잊혀가던 민족혼 깨우다
홍천 내촌면 동창마을
독립투사 김덕원 의사 후손
일제에 의해 집안 풍비박산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은 김창묵(97)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의 좌우명과도 같다.3·1운동 100주년을 맞는 고향 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도 그에게는 민족정신을 이어갈 터전이다.김창묵 회장은 “대한민국이 현재 번영을 누리는데는 조상들의 희생이 있었다”고 평소 신념을 강조했다.

▲ 김창묵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준
▲ 김창묵 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젊은이들이 올바른 역사의식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명준


▲ 김창묵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
▲ 김창묵 동창만세운동기념사업회장
홍천군 내촌면 동창마을에 들어서면 봄이면 꽃이피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이 우거지고 가을이면 물감을 뿌려 놓은 듯한 단풍으로 물들어 산책하기 좋은,‘척야산 문화수목원’이 자리하고 있다.나들이로 구경왔던 사람들은 수려한 자연경관에 반하며 즐거워하기 마련이지만 곳곳에 세워진 안중근 의사와 이순신 장군의 국가안위를 걱정하는 조형물 등을 바라보면 하나하나 손때 묻어있는 ‘애국정신’을 깨닫게 되고 깊은 감동을 받는다.

이제 조성되기 시작한지 30여년을 바라보는 척야산 문화수목원 속에는 김창묵 회장의 염원이 고스란히 배어있다.100년전 이곳 홍천군 내촌면에서는 강원도내에서 비극적이고 격렬한 3·1만세운동이 펼쳐졌다.‘동창만세운동’은 동창마을에서 주민 1000여명이 만세를 부르다 일제 경찰의 총탄에 ‘팔렬사’ 8명이 순국한 강원 최대의 만세운동이다.시위를 이끈 독립투사 중 한명이 김덕원 의사(義士)며 김창묵 회장의 할아버지의 6촌형제다.

김창묵 회장이 태어났을때는 이미 김덕원 의사가 사망한 후였다.마을에서 ‘천석꾼’으로 불렸던 그의 집안 재산도 김덕원을 체포하려는 일제에 의해 모두 사라졌고 김창묵 회장의 어린시절은 배고픔과 가난의 연속이었다.고단한 삶을 개척하기 위해 열여섯 나이에 농업개척단원으로 나홀로 만주에 갔다가 몇년 후 대한민국 광복을 맞고 다시 한국으로 귀국,서울에 터를 잡고 가난과 싸우며 억척같이 삶을 살아왔다.어느덧 ‘동찬기업’을 세우며 자수성가의 표본처럼 성공의 길을 걷게 됐다.

성공한 그의 앞에 1991년 고향인 홍천군에서 기미만세공원 조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이 전해져왔다.흔쾌히 수락하고 찾아온 고향은 자신이 할머니로부터 듣고 자라온 기억과 그당시 모습과는 사뭇달랐다.어느덧 자신의 종(從)조부의 독립운동 사실은 잊혀져가고 있었고 동창마을 곳곳에 남겨진 선열들의 애국정신도 흐려지는 듯 했다.김 회장은 자신이 나서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독립투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는 기념사업을 묵묵히 시작하게 됐다.김 회장은 “일제 탄압이 두려워 할머니는 가족의 독립운동 사실도 숨겼고 나조차도 힘든 생활에 고난의 세월을 원망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내 후손들이,이땅의 민족이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려면 민족정신을 이어나가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내가 해보자고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자신만만하게 시작된 기념사업은 처음부터 난관이었다.김덕원 의사가 만세운동 이후 동창마을 일대에서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해 3년이나 숨어 살았고 무덤은 커녕 사망 일시나 이유에 관한 기록도 찾기 어려웠다.

김 회장이 직접 자료를 수집하고 주변 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며 동창마을 애국의 역사를 고증하는데만 수십년의 세월이 흘렀다.김 회장은 “기념사업을 위해서는 서울의 집에서 출퇴근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이곳 척야산 근처에 거처를 마련해 며칠 밤을 새우며 일을 해야했다”며 “사재로 척야산 일대 땅을 구입하고 직접 공원을 설계했다.선양사업을 너무 강조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에 수목원처럼 친숙하게 꾸며 많은 사람들이 동창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단순히 수목원을 조성하고 조상의 독립운동 역사를 고증하는데만 몰두하지 않았다.동창마을 곳곳에 새겨진 독립투사들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기념사업들을 추진해왔다.이달에는 홍천 곳곳에 ‘밸런타인보다 올바른 역사 알자’배너를 설치하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김 회장은 “일제강점기가 36년이 아닌 72년이었다면 그 이후 2세대,3세대는 우리말과 역사를 잊어버리고 민족성을 잃어버렸을 것”이라며 “그만큼 역사는,민족정신은 꼭 후세에 남겨야할 우리시대의 사명과도 같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홍천군 서석면 수하2리 용호터마을 앞 강가 바위에 새겨진 ‘대한민국 만세’라는 글자를 발견,이 바위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애국정신을 고증해 기념사업화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김 회장은 “내가 어렸을때만해도 여기 강가가 이 바위보다 한참 높게 수위가 유지되고 있었다”며 “항일 운동을 하던 이 지역 의사들이 광복을 기원하며 일제의 눈을 피해 물속의 바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고 말했다.이어 “우리나라 사학자들과 국민들이 이같은 독립운동의 흔적들에 많은 관심을 갖고 역사화해 후손들에게 전달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꿈은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립투사들에게 관심을 갖고 숨겨져 있던,잊혀가는 독립투사들의 역사가 명명백백 밝혀지는 것이다.김 회장은 “일제의 탄압에 독립운동가 후손은 선진지식과 지혜를 배우지못했고 그러다보니 가난에 빠지고 힘든 세월을 보내왔다”며 “독립운동가 뿐만 아니라 그들을 숨겨주고 지켜주고 보살펴준 모든 사람들도 넓게 보면 독립투사와 마찬가지다.이들 모두가 행복해지고 또 우리 후손들이 감사해하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호석 kimhs86@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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