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상대방도 옳다는 시각에서 시작된다
자신의 주장 펼친 두 노비 다툼
황희 “모두가 옳다” 대답 해결
단순하지만 실천 어려운 진리
현 정권 최저임금 큰 폭 인상
찬성·반대 진영 각자 논리 존재
자신들만 옳다는 주장은 위험

어렸을 때 전기를 통해 읽은 황희 정승 일화다.두 노비 사이에 다툼이 생기자 노비들이 황희 정승 앞으로 달려와 제각기 자신이 옳다고 고하였다.첫 번째 노비가 장황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쳤다.그러자,황희 정승은 “네 말이 옳다”라고 대꾸했다.화가 난 두 번째 노비가 뒤질세라 자신의 입장을 구구절절 전했다.두 번째 노비의 말을 끝까지 들은 황희 정승이 역시 “네 말도 옳다”라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첫 번째 노비가 따져 물었다.“아니,제 말도 맞다고 하시고 이 사람의 말도 맞다고 하시는데 이게 말이 됩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이 다시 대답했다.“그 말도 옳다.” 어이가 없어진 두 노비가 황희 정승을 보고 볼 멘 소리로 “순 엉터리 아니십니까?”하고 말했다.그러자 황희 정승은 “그 말도 옳다”라고 대답하였다.결국,어어가 없어진 두 명은 정승 앞에서 실랑이를 벌여봐야 아무 의미도 없음을 깨닫고 물러나고 말았다.

최근 네 명의 고등학교 동창들과 연말연시 모임을 가졌다.두 친구가 자신들의 회사에서 각각 승진한 데 따른 축하 파티를 겸한 자리였다.한 친구는 임대업을 하고 있었으며 마지막 친구는 잠시 휴직을 하고 있었다.재미있는 사실은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이사로 각각 취임한 두 친구가 현 정권의 임금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었다는 것이다.하나는 알고 둘은 알지 못하는 처사가 바로 최저 임금의 급격한 상승이라며,자신들의 회사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국내에서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30대 중반부터 15년간 대학에 재직하면서 대학생들의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습관이 생겼다.비록 제자들의 취업을 적극적으로 알선하고 취직까지 시키는 맹렬 교수는 못될지언정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며 공감하는데 익숙해졌다.1980년대 말의 대학과는 차원이 다른 입학금과 등록금에서부터 바늘구멍만큼이나 좁아진 취업문에 이르기까지,불과 30년 여년 만에 너무나 열악해진 환경 속의 제자들을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봐 왔다.돌이켜 보면 필자가 대학에 재직하던 시절,대학생은 마치 자그마한 벼슬을 하나 하고 있는 정도로 사회적인 존경과 부러움을 받고 있었다.민주화 투쟁의 선봉장인 가운데 경기가 좋아 취업마저 잘 되니 이들을 존경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그렇게 강자로서 사회의 상층부에 속해있던 대학생들은 세 번에 걸친 세계적 경기 침체 속에 어느덧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며 냉소와 무관심,증오와 이기심이 가득한 세대로 변해버렸다.그런 대학생들의 시각으로 오랜만에 만난 고교 친구들은 2018년의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누가 과연 옳은 것일까? 최저 임금을 가급적 빨리 끌어올림으로써 사회의 음지에 놓여있는 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빡빡한 삶에서 탈출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옳을까? 아니면 그 같은 시각이 오히려 소탐대실이기에 완만한 최저 임금 상승이 보다 현명한 처사일까?

황희 정승의 견해를 빌어 볼 땐,모두들 옳다.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 사실을 양측 모두가 받아들여야 비로소 신뢰와 이해를 바탕으로 한 진정한 화합이 이뤄진다는 것이다.그렇지 않고 상대방이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른다는 시각으로 접근한다면 진정으로 윈-윈할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발휘되기가 어렵다.그런 면에서 볼 때,500여년 전의 황희 정승은 단순하지만 실천되기 어려운 진리를 꿰뚫고 있었던 시대의 혜안이었다.

중국 주나라의 백락은 천리마를 알아보기로 유명한 말 전문가였다.그런 그를 두고 당나라의 명문장가 한유가 이런 글을 남겼다.“천리마는 어느 시대에나 있지만 백락은 어느 시대에나 있는 것이 아니다.백락이 있은 다음에야 비로소 천리마가 있으니 백락이 없으면 천리마도 없다.” 조선 전기의 천리마에 해당하는 황희 정승을 알아본 이는 희대의 성군,세종이었다.청탁과 성추문,친인척 비리에 휩싸여 여러 번 파직을 당했어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세 불러들였다.나이가 들어 은퇴하고자 했지만 결코 면직을 허용하지 않고 87세가 될 때까지 정승 일을 시키면서 황희가 모친상을 당해 3년상을 치르겠다는데도 석달 만에 부른 이가 세종이었다.그리하여 56년간 태조,정종,태종,세종,문종의 다섯 임금을 섬긴 황희 정승의 재직 당시,조선은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태평성대를 구가했다.

최저 임금의 인상을 주장하는 이들도 옳고 이의 반대하는 주장하는 이들도 옳다.그런 까닭에 이번 정부가 이전의 유수한 정부들이 그랬듯 자신들이 가장 옳다고 생각할까봐 걱정스럽다.

자신이 옳고 상대방이 그르기보다 자신도 옳지만 상대방도 옳다는 시각을 지니는 것이 중요하다.그것이 다원주의 민주주의의 존재 이유다.유가 사상에서 말하는 중용이 그것이다.그래야만 비로소 태평성대가 열린다.그런데 요즘 황희 정승이 잘 보이지 않는다.그래서 안타깝고 답답하다.

심훈 교수는 196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를 역임했다.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02년부터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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