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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건웅의 풍수유람] 34. 재심전문 박준영 변호사 선영

2018년 01월 12일(금)     박창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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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친묘 ‘ 대명당’ 모친묘 ‘ 흉지’…오르락 내리락 인생역정 반영
모친 죽음에 방황 부친 사망 후 사시합격
고졸 학력에 고단한 변호사 생활 이어가
재심 전문 활동 ‘파산 변호사’로 유명세
부친 묘소 풍수파워로 기사회생 가능

재심(再審)이란 확정된 판결을 무효화하고 원점에서 다시 재판하는 것으로,일반 형사사건에서는 재심을 이끌어내는 것도 어렵고 설사 재심청구가 받아들여진다고 해도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받아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이런 재심사건을 전문으로 맡아 억울한 사람들의 누명을 벗겨주는 것으로 유명해진 박준영 변호사 이야기이다.세연정(洗然亭)을 비롯한 고산 윤선도의 유적이 남아있는 보길도를 가는 길에 박준영의 고향인 노화도를 들렸다.2008년 보길도와 노화도를 이어주는 보길대교가 개통되어 이런 여정이 가능했다.노화도에서 만난 촌로에게 박준영의 선영을 물어보니 친절하게 바로 알려주셨다.박준영은 노화도에서 이미 스타급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 박준영 변호사 부모 묘소.완도군 노화도 소재. 일손이 부족한 여는 시골처럼 묘소 뒤로는 잡풀이 우거져 있다.
▲ 박준영 변호사 부모 묘소.완도군 노화도 소재. 일손이 부족한 여는 시골처럼 묘소 뒤로는 잡풀이 우거져 있다.
1974년 노화도에서 태어난 박준영은 초등학교 때 공부를 꽤 잘했다.중학을 수석으로 입학하였지만 2학년 때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자 그의 방황이 시작됐다.고교시절에는 술만 먹는 아버지가 싫어서 가출을 한다.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새끼 웨이터,분식집 배달,식당 서빙 등 가출에 따른 온갖 궂은 일을 하면서 인생의 신산간난을 맛본다.그러다 어느 날 문득 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나 노화도로 돌아온 박준영은 가까스로 노화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장학생으로 목포대 전자공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1학기를 마치고 군에 입대했다.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하려 했으나 집안형편이 등록금을 마련할 처지가 못되었다.달리 방법이 없자 군대에서 만난 법대출신의 선임병을 따라 1997년에 신림동 고시촌으로 발길을 돌렸다.고시공부 중이던 2001년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 다음 해인 2002년에 5년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이 결실을 맺어 제44회 사법시험에 합격한다.변호사가 되면 인생역전이 될 것이라는 희망은 잠시 뿐이었다.삼성을 비롯한 여러 회사와 로펌에 이력서를 보냈지만 고졸 학력을 받아주는 곳은 아무 곳도 없었다.2006년 연고도 인맥도 없는 수원에서 법률사무실을 열었다.그러나 또한 고졸 학력인 그에게 누구도 사건을 의뢰하지 않았다.잘살고 싶어서 기를 쓰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사건을 의뢰받지 못하니 변호사라도 배가 고플 뿐이었다.그래서 시작한 것이 국선 변호였다.변호사의 평균 수임료가 300만 원하던 시절 국선 변호사의 건당 수임료는 20만원에 불과했다.그래도 열심히 하다 보니,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국선변호를 맡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한 달에 30~100건의 국선 변호를 맡아 ‘국선 재벌’이란 농담도 듣게 되었다.100건의 국선 변호를 수임한 달은 2천만 원의 수입이 생기니 그런 소리를 들을 만했다.그런 와중에 숙명처럼 ‘수원 노숙소녀 살인사건’의 재심을 맡게 된다.

▲ 묘소로 들어오는 맥로도. 사진 좌측이 부친,우측이 모친 묘소.
▲ 묘소로 들어오는 맥로도. 사진 좌측이 부친,우측이 모친 묘소.
수원 노숙소녀살인사건은 2007년 5월 수원고등학교 안에서 16세 소녀가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처음에 남자 20대 노숙인 2명이 지목되었고 나중에 청소년 5명이 지목되었다.이 사건을 다루면서 박준영은 노숙자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고 ‘이 사건을 뒤집으면 유명해지고 내 인생이 바뀔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으로 사건에 몰두했다.

‘수원노숙소녀살인사건’의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이끌어낸 박 변호사에게 익산 택시기사 살인사건,삼례 나라슈퍼 강도사건,무기수 김신혜 사건 등이 연이어 밀려왔다.이런 사건들을 모두 처리해내자 박준영은 재심 변호사로서 유명해질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재심 대상자들은 수임료를 요구할 수도 없는 사회적 약자들이었다.자비를 들여가며 활동하디보니 박준영은 급기야 1억 원 마이너스통장의 연장을 거절당하고 사무실의 임대료도 10개월치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사는 집도 보증금 3000만 원에 월 25만원을 내고 있었다.

그의 딱한 처지를 알게 된 박상규 기자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란 스토리 펀딩을 시작했다.2016년 11월 1억원을 목표로 93일간 진행된 프로젝트에서 568%인 5억6800만 원을 달성했다.펀딩에 참여한 사람은 1만4000여명.그들의 마음을 움직인 힘은 억울한 사람을 위해 끝까지 싸우는 변호사의 행동하는 양심이었다.펀딩에 참여한 후원자들은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재심의 기회가 주어지기를 바랬다.그런 마음에 화답하는 희망변호사로 떠오른 박준영 변호사는 돈과 권력이 없어 억울한 일을 당한 사법 약자들의 재심을 위해 쉬지 않고 달리고 있다.

묘소로 진입하는 맥로의 출발은 노화도를 벗어난 완도읍 방향의 바다 한 가운데이다.이 맥로가 부친의 묘소에서 정확하게 대명당을 맺었다.아버지의 장례를 치른지 일년 뒤에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이후에 국선재벌로 불리기도 했고 스토리 펀딩으로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것도 대명당에 모신 아버지 묘소의 풍수파워 덕분이란 생각이다.

▲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 손건웅(孫健雄) 풍수유람가
·춘천고등학교·강원대학교 졸업
·네이버카페 ‘동강의 풍수유람’ 운영
·저서 ‘세상을 풍수로 보다’ 외 1권
그러나 모친의 묘소는 맥로의 면배(面背)의 배(背)에 해당하는 흉지이다.학생시절에 겪었던 어려움과 변호사가 되어서도 파산 지경까지 몰리는 상황이 모친 묘소와 무관치 않다는 판단이다.대명당과 흉지에 자리한 부모 묘소가 그의 울퉁불퉁한 인생역정을 반영하고 있다.모친은 바로 근처에 비어있는 대명당으로 이장하길 바라는 필자의 바람이다.그러면 덜컹거리는 박준영의 인생행로가 순행할 것이며 그가 하는 의로운 일이 더 좋은 결실을 맺을 것이란 풍수적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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