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전 의병단 활약상 화제
춘천출신 마도현선생 조직 활약
춘천·인제 등 19차례 일경 습격
군자금 모금·징수 활동도 전개

▲ 춘천에 거주하는 마흥수(92)씨가 일제시대 ‘12인의 장총단’의병으로 활약했던 할아버지 고(故) 마도현 선생의 건국포장을 내보이고 있다.  방병호
▲ 춘천에 거주하는 마흥수(92)씨가 일제시대 ‘12인의 장총단’의병으로 활약했던 할아버지 고(故) 마도현 선생의 건국포장을 내보이고 있다. 방병호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강원도내 전역으로 퍼지고 있는 가운데 100여년 전 당시 도내에 주둔하던 일본 경찰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던 ‘12인의 장총단’ 의병단 활약상이 뒤늦게 화제가 되고 있다.‘12인의 장총단’은 춘천 출신 독립유공자 마도현(1882~1951) 선생이 주도해 만든 의병단으로 화승총과 사냥총을 들고 강원도 곳곳을 누비며 활약했다.

마도현 선생의 부친인 마정삼(1857~1907·1992 애국장 추서) 선생은 1906년 춘천을 중심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군자금 모금운동을 펴던 중 이듬해인 1907년 인제에서 일본군에 붙잡혀 홍천에서 총살당해 순국했다.부친이 총살당한 후 마도현 선생은 집안 깊숙이 화승총 7정을 숨겨두고 일본군에게 원수를 갚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렸다.그러던 중 1908년 정미의병으로 결성된 춘천의 유중락 의병진에서 순국한 박영관 선생의 아들 박순구와 의기투합해 항일투쟁에 나서기로 결심한다.이후 동생 마만봉,사돈 안이순·안귀봉 등 친인척을 가담시켜 이윽고 1921년 12명으로 구성된 장총단을 결성하게 된다.

이들은 인제 가리산에 본거지를 두고 6년여간 모두 19차례에 걸쳐 춘천,홍천,인제,양구 등지의 경찰관 주재소를 습격했으며 이 과정에서 일부 일본 경찰들이 사살됐다.1924년부터는 부호층으로부터 군자금을 모금,징수하는 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항간을 떠들썩하게한 장총단은 1927년 일제 군경의 대규모 포위수색작전으로 결국 해산됐다.

하지만 당시 언론의 보도가 잇따를 정도로 일본 경찰들에게는 무서운 존재였다.1927년 12월 9일 조선일보에는 강원 경찰이 장총단원 10명을 체포됐다는 내용과 함께 일당 11명이 전부 일가 또는 인척관계라는 보도가 실렸다.1928년 2월 15일 실린 속보에는 장총단 피착 이래 7년간의 소란이 종식됐다는 소식과 함께 공포에 떨던 강원도 부호들이 이제야 안심하고 있다는 내용이 보도됐다.

한편 마도현 선생은 이 일로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1928년 10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을 선고 받고 3년여간의 옥고를 치렀다.정부는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 42년 만인 1993년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박가영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