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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광장]또 다시 지지 않겠다는 마음의 단단함

2019년 08월 14일(수)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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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우 강원대 산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 박찬우 강원대 산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 박찬우 강원대 산림과학연구소 연구교수

요즈음 이웃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다.그 대안은 못되지만 일본을 이해하기 위한 한 사례로서 전나무 노거수에 숨어있는 기막힌 사실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필자는 오대산 높은 곳에나 있는 전나무가 우리나라 거의 모든 사찰에 있는 것이 이상하여 관련 조사 끝에 두 편의 논문을 조경학회지(주요 사찰에 일제가 심은 전나무 노거수의 식재의미 연구, 2015년), 산림과학회지(일제가 심은 전나무와 우리가 항일 사적지에 심은 전나무에 관한 고찰, 2017년)에 발표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가 일본인의 수호신으로 심은 신목이다.관련 추론의 정황증거를 제시한다.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조선고적도보’의 12,13권은 불사건축 사진이다. 1902년,1909∼1913년에 촬영된 사진이다.양산 통도사,합천 해인사,부산 범어사,구례 연곡사 소요대사 묘탑 등에 10∼20년생 크기의 전나무가 공통적으로 심어져 있는 사진이 있다.각 사찰이 자발적으로 심었는데 우연히 나타난 현상으로 보기 어렵다.일제가 일률적으로 심은 것이다.

부산박물관이 2009년에 발행한 ‘사진엽서로 보는 근대풍경’에 보면 용산 일본군사령부,남산 경성신사,남산 조선통감부,경남도청,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경주역,용두산 공원,명월관 앞 등에 10∼20년생 크기의 전나무가 심겨져 있는 사진이 있다.통영 충열사에는 여러 본의 일본전나무가 있었다.관계자 인터뷰,인터넷의 그루터기 사진 등을 종합하면 1938년에 심어져 2013년에 모두 벌채되었다.경기 양주 권율장군 묘소 앞에는 지금도 수십본의 전나무가 있다.2016년 조사 당시 103세의 식재자가 계셨고 따님을 통하여 1937년에 심었고,일제가 전나무 심기를 권유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경주문화원 향토사료관 앞에는 지금도 일제 쇼와(昭和)왕이 심은 일본전나무가 있다.1926년 식재 당시 왕세자 신분이었고,향토사료관은 조선총독부 박물관 경주분원이었다.일본 나가노현에 스와신사가 있다.홈페이지에 보면 서기 200년경 신공왕후가 신라를 정벌(일제가 왜곡한 역사)했을 때 스와신사의 신이 도와주었다고 홍보하고 있다.스와신사의 신은 신주(神柱)에 깃들어 있는데 그 신주는 직경 1m,높이 17m의 우라지로 전나무(Abies homolepis·잎 뒷면에 두 개의 넓은 흰 줄이 있는 전나무, 일본 전나무 ‘Abies firma’와 다른 종임) 기둥이 사용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 있는 전나무 노거수는 일제가 스와신사 신주에 깃들어 있는 신을 조선에 현신(顯神) 시키기 위해 심은 것이다.아주 옛날 신공왕후를 도와주었듯이 일제강점기 즈음 일본인에게 신덕(神德)이 내려지기를 바라며 심은 것이다.때문에 일본인이 갈 수 있는 모든 공공장소에 심었고,조선의 신이 있다고 생각되는 사찰과 부도,사당 등에도 심은 것이다.

전나무 노거수를 보며 일제의 특성을 생각한다.일본의 특성을 이해하며 또 다시 지지 않겠다는 마음을 노거수의 나이테만큼 단단히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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