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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가라앉힌 진실 ‘끝나지 않은 전쟁’

2019년 08월 14일(수)     윤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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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4주년]
1944년 징용선 타이헤이마루호
태평양 전쟁 동원 이동 중 격침
도 출신 500명 탑승 400명 수몰
일 정부, 사건 축소·은폐 일관


‘타이헤이마루(太平丸) 호’.1944년 7월 9일 쿠릴열도 최북단 호로무시로섬 앞 바다에서 한국인 징용자 1000명을 태우고 군사비행장 건설현장으로 향하다 미군의 격침으로 침몰한 징용선(徵用船)의 이름이다.당시 이 배에는 도내 5개 군 출신 500여 명이 탑승하고 있다가 안타깝게 대부분 수장됐지만 7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일본정부는 해당 사건에 대해 사과와 보상은 커녕 한국인 수몰자 수를 줄여 발표하는 등 여전히 축소·은폐하고 있다.

2006년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발간한 ‘타이헤이마루사건’에 따르면 태평양전쟁 당시 쿠릴지역 주요 섬에 비행장 기지를 보유하고 있던 일본군은 1942년 전선이 확대되면서 최북단 호로무시로섬에 전용비행기지를 추진하게 됐고,이 과정에서 강원도와 황해도 일대의 조선인 징용자들이 동원됐다.

당시 도내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도 출신 징용자들은 1944년 봄 각 지역 면서기에 의해 횡성·양구·화천·인제·회양군(북강원도) 등 5개 지역에서 각각 100명씩 모두 500여명이 강압적으로 동원됐다.이들은 춘천역에 집결해 서울~부산~시모노세키~아오모리~하코다테를 거쳐 쿠릴열도 투입 전초기지인 오타루로 이동했다.일본군은 오타루에 도착한 조선인 중 강원도 출신자를 1중대,황해도 출신자를 2중대로 편제해 건설작업에 투입했다.

오타루에서 1개월을 보낸 징용자들은 7월4일 어디로 가는지 목적지마저 모른채 ‘타이헤이마루호’에 올랐고 며칠 뒤인 9일 오전 10~11시 사이 미군이 쏜 어뢰에 배가 격침됐다.당시 생존자인 황종수씨의 구술에 따르면 “‘꽝’ 하는 굉음이 들렸고 기적이 두 번 울리더니 갑자기 우리 앞에 불기둥이 솟구쳤다”고 했다.피해자는 대부분 조선인 징용자들이었다.생존자들에 의하면 강제 징집된 강원도민 400여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은 그동안 묻혀있다가 1980년대 중반 생존자들의 증언과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유족자회의 끈질긴 추적 끝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각고의 노력 끝에 일본정부는 2002년 관련 사건의 조선인 사망자가 182명이라고 밝혔다.그러나 국내 단체들이 주장하는 희생자 수와는 큰 차이가 난다.더구나 2006년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가 당시 생존자들의 구술에 의존한 진상규명 책자만 발간했을 뿐 더이상의 피해조사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박인환 전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위원장은 “타이헤이마루호 사건은 일본 과거사 규명 관련 각종 위원회,진상규명위가 발족될 때마다 진상조사 목록에 올랐다가 정확한 조사 없이 사장된 사건”이라며 “사건이 재조명돼 일본의 사과와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윤왕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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