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 가려진 버닝썬 사건, 피해자 고통 귀닫은 한국사회
화제성 가진 연예인 문제서 점화
마약·몰카 등 자극적 내용만 부각
정작 고통받는 피해자목소리 외면
사건 진실 규명 등 대중관심 필요


‘버닝썬’은 여전히 불타오르는 중이다.‘나비효과’를 가끔 얘기하지만,이 정도의 나비효과는 거의 경험하지 못했던 것 같다.단순 폭행사건에서 점화된 이 사건.예상치 못하게 정상을 달리는 연예인들의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하더니 검찰과 경찰,정치권에까지 불길이 번지고 있다.관련된 뉴스가 ‘속보’ 타이틀을 달고 업데이트 되다 보니 매일 새로운 제목으로 올라오는 뉴스를 소화하기에도 바쁘다.게다가 자고나면 불거지는 의혹들은 상상력으로 따라잡기에도 버거울 정도이다.

이런 일이 과연 현실에서 가능한가?이와 같은 사건이 과연 우리 사회에서 가능한가?만약 이 일이 드라마였다면,시청자들은 볼멘소리로 비난을 했을 것이다.개연성이 없는 스토리라고,지나치게 빠른 전개로 대중들의 기호를 맞추는 데 급급하다고 말이다.여기에 한 마디를 더할 것이다.막장 스토리가 시청자들을 우롱하고 있다고.하지만 목전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이게 가능해?’라는 황당한 질문에 ‘그렇다’는 간단한 답을,비웃듯이 던진다.이 사건의 끝이 어떻게 될지,현재로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늘 그렇듯 사건은 사람들의 감정이 가라앉고,기록들이 차분히 모이면서 ‘진실’이라는 실체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다만 나는 사건의 추이를 살펴볼 뿐이지만 이 사건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건들이 예사롭지 않은 방식으로 해소되거나 잠재워지는 순간마다 ‘음모론’이 고개를 들었다.그 음모를 가능하게 하는 데는 대중의 관심이 집중된 연예인들이 있었다.그때마다 연예인들의 일탈이 선정적인 방식으로 보도되고 사람들의 관심도 빠르게 옮겨갔다.대중들이 연예인들의 일탈에 대한 비난,도덕적인 훈계를 하느라 진이 빠질 무렵이면 대체로 많은 것들이 무심히 제자리로 돌아오곤 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흥미로운 점은 구도가 반대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다.연예인들이 직접적인 도화선이 되고,그 지속적인 관심을 원동력으로 숨어있던 사건들이 서서히 드러나는 방식이다.그들은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들이었기에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고,그 덕분에 또는 때문에 상상할 수 없었던 검은 커넥션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떠오르고 있는 중이다.이미 충분한 화제성을 가진 연예인의 문제에서 점화되었기 때문에,대중의 관심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그래서 이 사건의 끝은 짐작하기 어렵다.막장드라마보다 더 막장인,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 사건은 소위 잘 나가는 연예인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지만,이런 지속적인 관심은 관음증적 분위기도 한몫하고 있는 듯 싶다.미투의 사회적 분위기 이후 너나 할 것 없이 입단속,몸단속을 하지만 차마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 관음증적 시선은 이 사건의 관심을 지속시키는 동력 가운데 하나이다.

이 사건의 연관검색어는 지금까지도 인기검색어에 걸려 있고,가장 많이 본 뉴스로 추천된다.클릭과 스마트폰 위를 부지런히 오가는 사람들의 손가락 터치는 조회 수로 이어진다.관련 기사에 쓰이는 용어들인 물뽕,마약,몰카,쓰레기,강간,성폭행,성매매,수면제,해외원정도박 등은 한마디로 자극적인 단어들의 집합장이다.그들의 카톡은 그럴듯하게 재현되어 기사화되고,이어 더욱 자극적인 형태로 편집되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원래의 기사에 새로운 사실 하나가 추가되어 ‘속보’로 재생산된 기사는 금세 핫뉴스가 된다.

자극적인 키워드와 헤드라인으로 채워지는 ‘많이 본 뉴스’ 목록을 훑어보는 순간,영화 ‘사바하’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영화 속의 인물인 박목사는 중요한 정보를 전달하며 요셉에게 이렇게 말한다.“아니,그런 거 말고 자극적인 게 있어야 돼.센 거.막 선정적인 거.좀만 더 깊게 들어가자.” 이 사건에 대한 관심이 자극성과 선정성에 상당 부분 기대고 있다는 사실은 우려할 만하다.자극성과 선정성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면,그 자극성과 선정성이 충분한 강도로 이어지지 않을 때,이 사건은 다시 잠잠해질 것이고 진실 찾기에서 멀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버닝썬사건’,‘승리사건’이라고 간단하게 이름붙이기도 하지만,본질은 스타권력에서 뻗어나간 복잡하고 다층적인 문제로 보인다.또한 이 사건은 몇몇 개인의 일탈인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의 욕망이 투사된 집합체처럼 보인다.개인의 일그러진 욕망,그것을 소재로 한 기사와 콘텐츠 생산으로 조회 수의 상승을 기대하는 갈망,조회 수에 따라 움직이는 상업성 광고들.정작 고통 받는 피해자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연예인도,콘텐츠도,광고도,모두 대중의 관심을 먹고 산다.자극적이고 선정적일수록 대중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상상할 수 없는 끝모를 검은 커넥션도 대중들의 관심 덕분에,유례없이 빠른 수사로 이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보도,뉴스,유튜브 등으로 재생산되는 기사는 대중의 욕망을 자극하는 표현의 경쟁장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승리와 정준영이라는 개인에 집중포화된 자극적인 언어들과,이미 수없이 반복되어 너덜너덜해진 선정적 표현의 더께는 무겁고 두껍다.짧은 시간 동안 빠르고 차곡하게 쌓인 선정성×자극성이라는 더께를 걷어낸 후에야,사건의 본질이 더 선명하게 보이고 피해자들의 고통이 더 잘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유강하 강원대 교수

중국고전문학·신화를 전공했다.지금은 강원대학교에서 인문예술치료를 연구하고 있다.지은 책으로 ‘아름다움,그 불멸의 이야기’,‘고전 다시 쓰기와 문화 리텔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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