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꼴 도시풍경,지역 고유역사·자연 담아내지 못한 탓
현대도시 편리·안정·경제 우선
도시경관·건축물 정체성 부족
지역성·삶의 방식 표출돼야
‘살기 좋은’ 보다 ‘살고 싶은’ 도시
수려한 자연 갖춘 강원도 지향점

살기 좋은 도시와 살고 싶은 도시의 차이점은?살기 좋은 도시란 정량적이고 물리적 요소의 충족을 지향한다.예를 들면,그 도시에 도서관이나 예술공연장 등의 양,크기,시설의 질로써 그 도시를 판단한다.그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의견보다는 전문가나 행정가들의 판단에 의해 살기 좋고 나쁨이 결정된다.그 도시 사람들 중 문화에 관심이 없고,도서관이나 예술공연장에 갈 수 없는 환경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도시는 분명 살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반면 살고 싶은 도시는 내 고향이어서,어릴 적 추억이 생각나서,그 도시의 역사와 전통에 대한 문화의 자부심 때문에,살기에 불편해도 살고 싶은 도시다.즉 시민 스스로의 삶을 근거로 살고 싶다고 결정되는 도시다.

이러한 살고 싶은 도시는 강원도 중소도시가 나아갈 방향이다.강원도의 모든 도시는 수려한 자연환경을 갖고 있고,이와 어울리는 심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그 도시경관은 그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경관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살기 좋은 도시를 표방하면서 시청사나 군청사를 최대한 크게 건축하고 문화,예술 공간을 욕심껏 만들어도 경제력과 절대적 다수의 인구를 가진 수도권의 대도시에 비해 살기 좋을 수는 없다.물리적으로 멋진 대규모 공원이나 외견상 보기 좋은 재개발 아파트단지보다는,작은 골목길들이 만나 형성된 동네공터에 정자나무 그늘이라도 이웃 간에 관계와 소통이 있어 기대며 살고 싶은 정감 넘치는 장소를 지향할 때 도시의 정체성과 특성이 문화로서 표출되기 때문이다.

▲ ▲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해 디자인한 영월 동강탐방안내소(사진 위).조선소와 중공업지대였던 스페인 빌바오를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킨 구겐하임 미술관 (아래).
▲ 최소한의 재료를 사용해 디자인한 영월 동강탐방안내소(사진 위).조선소와 중공업지대였던 스페인 빌바오를 문화도시로 탈바꿈시킨 구겐하임 미술관 (아래).
경제력이 아니고 문화가 도시의 경쟁력이 된 지금,도시경관은 그 도시의 문화적 척도를 보여 준다.그 도시문화의 여러 구성요소 중 건축물은 그 도시의 문화표현이라고 할 만큼 주도적이다.(건축물이라 함은 단순히 건물만이 아닌 도시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만들어진 공간과 형태,그리고 광장이나 마당,영역성을 느끼게 하는 담장 등의 구성물을 모두 포함한다.)그러나 이러한 건축물이 자기 자신을 표출하는 외부형태와 내부 공간 계획에 들이는 노력에 비해 남들과 공유하는 필지 내의 외부공간에 들이는 비용과 노력은 매우 미천하고,대지경계선을 넘어 주변과의 조화와 맥락을 고려한 도시경관에 관해서는 거의 고려조차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그러나 도시문화는 건축물들의 외부 공간들에 의해 형성되는 도시공간의 자유로움과 어울림 속에서 사람들의 삶이 표현되어야 더욱 소중해 진다.

도시의 모습이 자연환경과 어울리고 고유한 특성과 정체성이 차별되게 표현되어 도시의 경쟁력으로 자리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의 전문가나 시민들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도시경관과 건축물은 주변에 대한 이해와 배려,더불어 사는 공동체의식을 갖고 행동할 때 새로운 도시경관과 정체성이 표출된다.도시경관의 모습은 그 도시의 경제적,자연적 환경 뿐 아니라 도시민과 건축가의 삶의 방식 그리고 행정가의 의식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격 지워진다.도시의 경관이 어차피 인공적인 산물이라면 그 모습은 사람이 어떻게 성격을 부여하느냐에 달려있고,그래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전통이 중요해진다.

도시환경에서 경험한 마음가짐은 건축표현으로 이어진다.대로변의 상가에서 물건을 도로에 내어 놓고,자동차·쓰레기가 보도나 차도를 막고 있는 풍경은 그 도시의 인심을 여실히 보여준다.인심은 음식에서 나오고,우리나라의 음식문화는 세계적으로도 그 인심이 후하다.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인간관계에서도 나타난다.따라서 인심이 후한 지역의 인간관계의 분위기가 도시경관이나 도시문화에 나타나야 하는데 그 문화의 소산인 건축물에는 남을 배려하고,주위환경을 고려한 손해를 감수하려는 인심은 박하다.아마도 6·25 이후 최빈국에서 경제성장만을 목표로 달려 온 지금까지의 관습과 습관을 세계적으로 문화강국이 된 지금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따른 것이리라.

이웃과 관계맺음에 무관심하고 도시와의 관계에 아무생각 없는 건물,도시경관에 경쟁력 있는 문화와 장소는 없다.우리의 자연경관에 조화된 사람들의 마음이 도시의 경관에 나타나도록,건축이 더불어 사는 사회문화의 결실이 되도록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살고 싶고,인심이 후한 지역의 사회상이 도시공간과 도시경관에 나타나도록 해야 한다.

현대도시 모습은 자연환경과 역사적 특성에 관계없이 그 풍경이 비슷하게 표출되고 있다.편리성,안정성,경제성이 우선했기 때문이다.새로운 문화의 정체성이 느껴지는 건축물과 도시경관이 생겨나야 한다.그것은 지역의 역사와 전통이 만들어내는 경관일 수도 있고,현재를 사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새로운 방식으로 표출하는 도시경관일 수도 있다.살고 싶은 도시를 표방하면서 만들어 갈 우리 도시들의 도시경관이다.



이석권 강원대 건축과 교수

△춘천고·강원대 건축공학과 졸업 △한양대 공학 석사·강원대 공학 박사 △대한건축사협회·한국도시설계학회·한국문화공간건축학회 정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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