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광해군 3년(1611년) 과거시험문제로 나라에 가장 시급한 사안과 대책(책문)을 묻는 문제가 출제됐다.그런데 임숙영(1576∼1623)의 답변이 파문을 일으켰다.그는 “임금의 실수와 허물에 대해 삼가 죽기를 각오하고 대답하겠다”며 “임금의 실수는 국가의 병으로 자만심을 버리고 신중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척신의 무도함도 비판했다.한마디로 “임금이 정신을 못 차리는 것이 가장 화급한 문제”라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중종29년(1534년) 나세찬의 과거시험 필화사건이 있어 임금을 비판하는 답변은 상상할 수 없었다.

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임숙영이 병과말석으로 급제했다.급제사연이 만만치 않았다.시관인 심희수가 장원급제시키려 했으나 광해군이 노해 낙방을 명했다.그러자 삼사관원들과 이덕형·이항복 등 대신들까지 삭과의 부당성을 지적했다.결국 광해군은 임숙영을 다시 급제자로 임명했다.과거시험 응시생이나 시관의 목숨 건 기백이 놀랍다.임금도 무서워하지 않은 올 곧은 선비정신과 임금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한 관리들의 시대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 후 408년이 흘렀다.현재의 청와대와 여권이 임숙영의 과거시험답변을 봤다면 어떻게 했을까.결론부터 말하면 임숙영은 급제는 고사하고 적폐인물로 몰렸을 것이다.청와대와 여권은 김태우 전 감찰관과 신재민 전 사무관의 폭로에 살벌한 언어폭력으로 대응했고,김경수 경남지사를 구속한 판사를 적폐인물로 몰아 탄핵까지 주장하는 것을 보고 이 같은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청와대와 여권은 문재인 대통령과 현 정부에 대해선 비판해서는 안 되는 성역으로 여기는 인상을 주고 있다.

모든 것이 나는 옳고 너는 틀리다는 논리다.이는 청와대 대변인의 “문재인정부의 유전자에는 민간인 사찰이 없다”는 말에 함축되어 있다.조돈문 노회찬재단 이사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진보엘리트주의자들은 진보가치를 가졌다는 것만으로 자신의 모든 게 정당화 되고 자신과 다른 가치는 모두 틀렸다고 생각한다”고 했다.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스스로에겐 엄하고 다른 사람에겐 너그럽게 대하겠다(薄己厚人)”고 했지만 최근 여당의 목소리는 반대다.스스로에겐 너그럽고 다른 사람에겐 엄한 것(厚己薄人)으로 보여 이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점점 싸늘하게 느껴진다.

권재혁 논설위원 kwonjh@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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