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오 차상찬 학술대회

▲ 청오 차상찬 1887∼1946·춘천출신
▲ 청오 차상찬
1887∼1946·춘천출신
강원도민일보는 창간 26주년을 맞아 한국잡지언론의 새 지평을 연 청오 차상찬(1887∼1946·춘천출신) 선생의 업적을 선양하기 위한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를 23일 오후 한림대국제회의실에서 개최했다.청오차상찬기념사업회와 공동으로 주최하고 한림대 아시아문화연구소와 강원문화교육연구소가 주관하며 강원도와 춘천시,옥산가 데미안이 후원한 이번 학술대회의 기조강연과 주제발표를 간추려 싣는다.

▲ 2018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가 23일 오후 한림대국제회의실에서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  이원규 춘천시의회의장,  윤성보 도문화관광체육국장, 김만기 춘천부시장, 정진석 한국외대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명준
▲ 2018 청오 차상찬 학술대회가 23일 오후 한림대국제회의실에서 김중석 강원도민일보 사장, 김중수 한림대 총장, 이원규 춘천시의회의장, 윤성보 도문화관광체육국장, 김만기 춘천부시장, 정진석 한국외대명예교수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김명준

[기조강연] 식민지 조선의 항일 문화운동과 ‘개벽’┃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잡지 ‘개벽’ 새로운 사상 용어 체계화 민족 진로 제시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
‘개벽’은 일제 강점기에 근대사상을 선도하고 민족주의 이념을 추구한 대표적 종합잡지로 사회개혁,문화발전,민족정신 부활 등 거대담론에 대한 지식인 집단의 의사를 반영했다.

정진석 교수는 ‘개벽’이 추구한 항일 문화운동을 ‘민족,문학,사상,여성,어린이’라는 키워드로 규명한다.3·1운동 후 개조주의(改造主義),민족자결주의와 같은 새로운 사상이 나타났을 때 이러한 용어들을 체계화하면서 민족의 진로를 제시하려 했던 잡지가 ‘개벽’이었다.

‘개벽’에 실린 점진적 독립운동론의 대표적 논문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이었다.이광수는 상하이에서 창간된 ‘독립신문’의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다가 1921년 3월 말 쯤 귀국해 ‘개벽’에 3편의 논문을 발표했다.‘중추계급과 사회’(1921.7),‘소년에게’(1921.11~1922.3·5회 연재),세 번째가 ‘민족개조론’(1922.5)이었다.이 논문은 독립운동의 방안을 둘러싸고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개벽사는 1922년 6월에 ‘부인’을 창간했다가 이듬해 9월에 제호를 ‘신여성’으로 바꿔 1934년 8월까지 발행,당시 ‘신여성’이라는 사회적 용어로 널리 사용되던 풍조를 선도했다.개벽사가 발행한 ‘어린이’잡지는 어린이 운동의 선구자 소파 방정환(方定煥)이 주도했다.

총독부는 1926년에 작성한 비밀기록에서 ‘개벽’에 대한 미온적인 처벌로는 효과를 거두기 어렵기 때문에 철저하고 준엄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개벽’은 인심을 혹란(惑亂)케 해 통치상 유해하고 안녕질서를 방해하는 부분이 크기 때문에 폐간처분(1926년 8월)을 내리고 책임자는 사법처분에 부치려했던 사실도 기록돼 있다.총독부의 ‘개벽’ 폐간은 당시 조선인 발행 신문 잡지에 대한 경고적 탄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주제발표1 차상찬과 ‘ 별건곤’┃송민호·홍익대
“식민지 조선 잡지 최초 ‘취미’영역 개척”


▲ 송민호·홍익대
청오 차상찬에 대한 기존의 연구적 접근은 천도교 기관지로 시작해 정치,사상을 다룬 종합 잡지로 발전해나간 ‘개벽’과 관련해 이뤄진 것이 대부분이었다.일제의 무단통치의 시대를 거쳐 문화통치의 시대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창간된 ‘개벽’이 겪어낸 검열과 통제는 시대의 상징이 됐고 차상찬이 그 핵심에 놓여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본 발표문은 청오 차상찬 선생의 활동 윤곽을 두드러지게 보여주고 있는 ‘별건곤’의 ‘취미’ 지향성이 어떻게 시작될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밝히는 데에서 출발한다.차상찬은 ‘역사담’과 ‘방문담’ 등의 야담의 글쓰기 방식을 차용해 대중적 독물(讀物),즉 읽을거리로 만들어 잡지 ‘별건곤’의 성공을 이끌었다.이처럼 식민지 조선에서 잡지 최초로 ‘취미’의 영역을 개척했던 ‘별건곤’의 차상찬 선생은 이후 ‘신동아’나 ‘삼천리’ 등 대중잡지의 출현에 영향을 주었던 식민지 조선의 문화기획자였던 것이다.


주제발표2 차상찬의 민요 수집과 유형 연구┃유명희·한림대
“ 민족 냉혹한 현실 처절함 보여주고자 노력”



▲ 유명희·한림대
차상찬의 ‘조선민요집’은 현재 춘천시 온의동 데미안책방에 있는 차상찬문고에 보관돼 있다.

‘조선민요집’의 목록을 대강 정리하면 도별로는 경상북도,경상남도,전라도,강원도,평안도,평안북도,함경도,충청도 등이다.이 ‘조선민요집’은 ‘조선문화의 기본조사’를 바탕으로 엮은 것으로 보인다.

차상찬은 ‘조선 문화의 기본조사’에 참여해 전국 팔도를 모두 직접 답사하고 취재하고 기사를 썼다.이 서사민요 중 조선민요집,개벽,별건곤에 모두 실린 사승노래가 있다.굳이 이 서사민요를 택해 다시 실은 데는 차상찬이 우리 민족의 유구한 전통을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있음을 강조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춘천이 낳은 인물,차상찬은 민요를 수집하고 선별하는 데에도 우리 민족이 처한 현실의 냉혹함과 처절함을 보여주고자 노력했음을 알 수 있다.이는 그의 역사의식과 민족주의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것이다.


주제발표3 차상찬의 경계인적 문화 인식┃김헌·강원대
“지배·피지배 에피소드 통해 차별 해소 기원”


▲ 김헌·강원대
차상찬은 전통에 관한 다양한 관심과 애정을 발산했다.전통적 역사서술에서 다뤄지지 않은 내용을 발굴하고 민간에서 구전되는 민요와 동요를 채집·발표했다.

차상찬은 식민지 시기 강원도에서 벌어진 지배와 피지배의 양상을 에피소드를 통해 신랄하게 보여줬다.식민권력의 차별적 행위를 비판해 조선인의 생존권,인권,불평등의 해소를 기원했다.산업화를 통해 드러난 사적 욕망을 파헤쳐 조선인 대중의 각성을 요구했다.그러나 지배와 피지배의 공간 속에서 근대적 계몽주의는 피지배 지식인과 지배 권력이 동일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제였다.계몽의 대상이 동일했으며 피지배 지식인은 계몽의 목표를 직접적으로 제시할 수 없다는 한계에 봉착해 있었다.

차상찬은 엄혹한 식민지하에서 조선의 근대화를 소망했고 근대인이 되고자 했다.동시에 주어지고 물려받은 반만년의 역사와 삶의 터전을 쉬이 다루지 않았다.그는 경계적 지식인이었다.

“역사기반 야사·야담 창작 연구 가치 높아”

종합토론

>> 토론자
백두산 성공회대 교수
이영식 강원대 교수
이아리 서울대 교수
김연숙 경희대 교수
엄태웅 강원대 교수

>> 사회
김명준· 하정승 한림대 교수

△백두산(성공회대)=발표문에서 앞선 연구성과를 토대로 ‘문화기획자’ 청오 차상찬의 행적을 집중해 다루고 있어 반가웠다.발표문은 청오가 ‘별건곤’의 편집인으로 등장하며 식민지 출판계에 모습을 드러내던 1928년을 기점으로 이전의 문화사적 배경과 초창기(1928-1930년) 차상찬의 ‘별건곤’과 조선야담사 관련 행적을 주로 서술하고 있다.큰 그림의 1부와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마지막에 청오의 야담운동에 대한 서술에서는 다음 연구를 예비하는 많은 화두를 앞서 제시하는 듯해 흥미롭게 읽었다.

△이영식(강원대)= 청오 차상찬 선생의 민요에 대해 논의한 글을 접한 토론자는 먼저 반가움을 표한다.청오 차상찬의 이름을 알고 있는 민요연구자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발표자는 청오가 수집·정리해 ‘조선민요집’,‘개벽’,‘별건곤’ 등에 수록한 민요 목록과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소개하고 있어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웠다.특히 발표자는 청오가 신라를 ‘조선의 황금시대’로 보는 까닭을 ‘우리 민족의 유구한 역사적 전통에 대한 자부심’의 발로로 이해했는데 공감을 한다.

△이아리(서울대)= ‘기본 조사’에서 차상찬의 글은 적극적인 개선책을 개진하지 않고 차별의 실상만을 보도하는 소극적인 표현의 한계 때문에 ‘자기식민화’의 위험이 있었으며 결국 ‘식민 권력의 그것과 흡사한 근대 인식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 주로 강조되고 있다.그런데 ‘기본 조사’에서 통계 자료를 제시하면서 끊임없이 민족적 차별과 차등을 부각시키는 전략은 당시 민족주의 언론인으로서 충분히 적극적이었다고 보이며 차상찬 개인의 인식 복합성을 드러낸다기보다 근대화 과정 자체에 내재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김연숙(경희대)= 일제 강점기 언론인,역사학자,문학자,민속학자인 동시에 한문학적인 소양과 근대 학문까지 아우르는 청오 차상찬 선생의 궤적을 꼼꼼하게 살펴보는 세 분 선생님의 발표문을 읽는 것은 제게 특별한 경험이었다.그로부터 지금을 살아가는 나는 어떤 모습인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학술연구논문에 대해 지나치게 감상적인 소감을 말씀드려서 부적절하다 싶기도 하지만 학문의 존재 이유가 더 나은 인간과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있는 것이라면 이런 소감 또한 유의미하지 않나 싶다.

△엄태웅(강원대)= 이번 주제발표는 ‘차상찬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해주셨다.발표문에 쓰신 것과 같이 그의 행적이나 지식인으로서의 지향을 살펴볼 때 그를 문화기획자라고 설명하는 것이 매우 적합해 보인다.그리고 그 맥락에서 차상찬이 쓴 수많은 야사 혹은 야담의 존재에 접근할 필요가 있을 듯하다.일제강점기라는 시대적 조건 때문에 더욱 그러하겠지만 그가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역사 기반 야담을 창작한 것은 의미가 작지 않아 보인다. 정리/김호석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