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학년도 대학수능시험이 15일 전국 1190개 시험장에서 일제히 치러졌다.수능시험은 짧게는 지난 3년의 고교생활을 결산하는 의미가 있다.대학진학을 위해 거쳐야 할 관문인 동시에 학창시절을 총정리하게 된다는 것이다.크게 보면 초등학교까지 거슬러 올라가 12년에 걸친 긴 초·중등 교육과정의 일단락을 뜻한다.배움의 길에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수능은 또 다른 단계로 이행하는 중요한 의식이다.

그러나 현재 교육과정과 평가방식이 과연 교육의 원론과 시대 변화를 적절하게 수용하고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끊임없이 제기된다.수능시험으로 상징되는 한 번의 평가에 초·중등 전 교육과정이 얽매여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저마다의 재능을 최대한 키워주고 교양과 상식을 겸비한 사회인으로 성장하게 하는 게 교육일 것이다.우리 교육이 이런 당위에 부합하느냐? 이것이 이즈음 새삼 제기되는 물음이다.

점수가 목표가 된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제기된 것이 아니다.중국 고전에도 교육은 거의 일관되게 비중 있는 테마로 등장하고 있다.‘예기(禮記)’의 학기(學記) 편이 여기에 속한다고 할 수 있는데,오늘과 비슷한 문제의식과 고민이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오늘날 가르치는 자는 그 점필을 되풀이하고 물음이 많아 말이 수다하기에 이른다(今之敎者 呻其占畢 多其訊 言及於數)”는 대목이 눈에 띈다.

여기에 나오는 신기점필(呻其占畢)이라는 말에 당대의 고민이자 오늘의 문제가 녹아 있다.이 가운데 점(占)은 본다는 것이고,필(畢)은 간(簡)과 상통하는 것으로 서적이나 기록을 의미한다.결국 눈에 보이는 교과서를 달달 외우지만 그 깊은 뜻에 통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다기신 언급어수(多其訊 言及於數)은 가르침이 많아 말이 번다하다는 것인데,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한 말이라 하겠다.

그래서 교육이 배우는 자의 재능을 다하게 하지 못한다(敎人不盡其材)는 것이며,결국 배움을 괴롭게 여기고,이로움을 알지 못한다(苦其難而不知其益也)고 지적한다.한 번의 수능에 올인 하는 오늘의 모습과 닮은꼴이다.어제 59만 여 명의 수험생은 괴로움은 크고 깨달음은 적은 긴 배움의 터널을 빠져나왔다.모든 수험생들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낸다.이들의 앞길에 이전과는 다른 배움의 길이 열리길 바란다.

김상수 논설실장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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