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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순의 미술평론] 화가의 삶터, 엄마의 정원

2018년 11월 10일(토)     최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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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말 많은 화가 길종갑, 대작 주인공 두류산 낙점
‘엄마의 정원’ 주제 그림
15일부터 춘천 명동집서 전시
작가와 어머니 굽어보는
화천 두류산 풍경 120호에 담아
강약 맞춘 잔잔한 색의 물결
'엄마의 정원' 얇게 디테일 드러내

▲ 두류산풍경(가을) 120호 유화 2018.
▲ 두류산풍경(가을) 120호 유화 2018.
사창리가 있는 화천에는 화가 길종갑이 산다.권력의 무상함에 지친 조선의 선비도 그곳의 자연에 반했던 곳이다.곡운 김수증이 벼슬을 버리고 그곳으로 갔다.물길을 따라 아름다운 9곳을 정해 곡운구곡(谷雲九曲)이라 불렀다.화가 조세걸이 곡운구곡을 그리고 곡운의 가족과 친지들이 시를 붙였다.그 유명세에 다산 정약용도 답사하고 그에 대한 평을 남겼다.다산은 자신만의 구곡을 다시 정해 남기기도 했다.길종갑이 전시에서 자주 다루었던 주제이기도 하다.

이번 전시는 그런데 그 주제가 아니다.화가는 ‘엄마의 정원’을 주제로 그렸다.그 작품으로 15일부터 춘천 명동집에서 전시를 연다.

‘엄마의 정원’에 나오는 소재 중에는 우선 두류산이 있다.산 또한 전에 많이 그리던 화악산이 아니다.작가와 어머니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웅장한 산은 역시 화악산이긴 하다.그렇지만 까마득히 높은 산 바로 북쪽 아래 있는 그의 마을은 그림자 진 겨울 산의 위세에 눌려 쳐다볼 수밖에 없는 산이다.

그에 반해 두류산은 이 마을을 남쪽에 두고 있다.1000m에 육박하는 높이의 산이지만 상대적으로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을 가진 채 언제나 해를 가득 품고 마을 사람들을 맞아주고 있다.역사와 웅장함과 유명세를 가진 화악산은 이번 전시에서는 한 편으로 밀려나 있다.

두류산(頭流山)은 지리산의 옛 이름이기도 하다.두류산은 원래 ‘백두산에서 흘러나온 산줄기의 끝에 있는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그 산이 이곳에 작은 산 하나를 떨어뜨려 놓고 지리산으로 갔다는 것이다.그게 오늘 그림에서 보게 되는 화천의 두류산이다.금강산을 찾아가던 신선들이 이 두류산의 경치에 반해 잠시 쉬어갔던 곳이기도 하다.이 산을 북서쪽에서 보면 여인이 옆으로 누워있는 형상이라 당대 최고의 미인인 ‘명월’의 이름을 붙여 명월산이라고도 불렀다.그 북서쪽 마을은 지금도 ‘명월리’다.

이 산이 어머니와 아들이 사는 곳인 사창리를 굽어보고 있다.이름이 좀 이상하다고 말하곤 하는 사창리(史倉里)는 ‘나라의 곳간’이 있던 곳이라는 뜻이다.그만큼 요지로서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서 그곳 사람들이 오히려 자부심을 갖는 이름이기도 하다.봄부터 겨울까지 사철 그곳에 있는 두류산이 작가 모자(母子) 삶의 일부를 이룬다.그들이 일구는 배추밭에서도 두류산은 마치 그림의 주인처럼 화면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엄마의 정원 유화 2018.
▲ 엄마의 정원 유화 2018.
‘가을 두류산’에서 작가의 붓 길은 감추어져 있다.산마다 골짜기마다 나무와 숲과 논밭의 작은 생명들이 작가의 필치대신 살아나 있다.전부터 그랬지만 그의 작품 경향을 설명할 수 있는 본령은 역시 대작(大作)이었다.하고 싶은 이야기가 넘치는 작가의 너른 이야기 터가 커다란 캔버스였기 때문이다.그 중에서 캔버스의 하얀 밑바닥이 드러나게 투명하고 맑은 그림은 이렇게 세련된 작가가 다 있을까 생각하게 할 정도다.거대한 산들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감성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 두류산 같은 어머니일 것이다.백의에 백발이 성성하고 살아온 세월을 견딘 주름이 가득한 어머니.우리는 안다.그 얼굴 안에 얼마나 많은 세월의 깊이를 작가가 하나하나 담았는지를,또 그 주름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뭉클함을 전하고 있는지를.세월도 삶의 깊이도 모두를 덮을 만한 감동의 순간을 위해 누구든 사는 것이 아닐까.예술이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감동임을 우리는 누차 마음에 새겨왔다.그런 감동을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라면 화면의 색과 필치와 구성과 조형성이 무슨 문제가 되겠는가.

어머니를 가장 잘 설명해주는 작품도 ‘엄마의 정원’이다. 얇게 디테일이 드러난 식물로 가득 찬 크지 않은 작품이지만 이 역시 기품을 보여준다.그 화면은 어떤 시각적 강요도 없이 우리 눈에 녹아드는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있다.

바닥이 드러나는 옅은 채색,긁어낸 선으로 이루어진 조형 처리들,강약을 맞춘 잔잔한 색의 물결이 서로를 지탱해주고 있는 전체적 효과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하다.

길종갑 그림에서는 원래 거대한 화폭과 거친 필치에 강렬한 색이 뒤덮은 화면이 압권이었다.뭉크나 고흐 같은 격렬함과 열정을 그런 그림에서 읽게 된다.작가의 화업 전체를 살피는 일이라면 그 속에 명작이 살아 있어야 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는 하나도 미화되지 않았다.생활과 도덕은 거칠고 파괴적이었다.그럼에도 명곡과 그게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영화 전체를 덮고도 남았다.분명 감동은 충격의 탄생비화 위에 핀 명곡 속에 있었다.길종갑의 작품 퍼레이드에 갖는 기대 역시 그런 명작에의 감동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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