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네상스적 ‘이상’ 깨고 탄생한 초월적 예술
무명의 젊은 조각가 미켈란젤로
‘피에타’에 마리아 젊은 얼굴 새겨
시공간 통일성 균열 논쟁의 중심
당시 성모 향한 숭배 분위기 투영
완벽함 이상화한 르네상스 시대
파격의 힘 통해 미학적 성취 이뤄
조각·회화·건축 등 진정한 만능인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만나는 바티칸.그곳 자체가 르네상스 최고 예술품이었다.그리고 또 그곳에서 미켈란젤로는 얼마나 압도적인지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그런데 사실 미켈란젤로는 그 천장화를 그야말로 억지로 끌려가다시피 해서 그렸다.그 작품 이전에 그렇게 거대한 회화작품을 그가 그렸던 적도 없다.그러니까 검증되지 않았던 미켈란젤로가 그 천장에서 인류역사상 비교가 불가한 명작을 바로 만들어낸 셈이다.

▲ 베드로 대성당에 소장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500년 높이 173.9cm 크기의 대리석으로 제작됐다.
▲ 베드로 대성당에 소장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1500년 높이 173.9cm 크기의 대리석으로 제작됐다.
미켈란젤로의 데뷔작부터가 그랬다.원래 미켈란젤로는 조각가로 알려졌다.그의 조각품 명작만도 넘치게 많다.춘천 한림대 교정에도 복제되어 있는 ‘다비드 상’을 포함해 ‘모세상’,석고상으로 유명한 ‘줄리앙’과 그 앞에 누드의 꼬인 몸으로 의인화된 ‘낮과 밤’과 같은 작품들….그리고 이 작품 ‘피에타’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바티칸에서 시스티나를 보기 전에 먼저 유럽의 거대한 고딕대성당들의 크기를 압도하는 베드로 대성당의 위용을 볼 수 있다.그 안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조각품이 바로 미켈란젤로의 이 ‘피에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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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라멘테 설계인 검은부분을 미켈란젤로가 한쪽으로 길게 늘인 베드로 대성당 수정 평면도.
피에타(pieta)는 영어로 피티(pity)에 해당하는 말로 ‘경건한 애도’를 뜻한다.보통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와 그를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로 구성된다.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미켈란젤로 작품만으로도 세 개의 피에타가 있다.이것은 그중 스물이 갓 넘은 무명의 그를 화려하게 세상에 알린 작품이다.주름진 마리아의 옷에는 어깨로부터 내려오고 있는 어깨끈이 있다.거기엔 그 자신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이 작품이 공개되었을 때 사람들이 자신이 조각한 것이라 해도 믿지를 않자 전시되고 있는 작품의 어깨끈에 이름을 새겼다.그게 작품 앞에 드러나게 보이는 서명으로 남게 된 것이다.마리아의 얼굴이 너무 젊은 것도 논쟁의 대상이 되었다.완벽하고 안정적으로 균형 잡힌 삼각형구도를 가지고 있지만, 시공간의 완벽한 통일성이라는 르네상스의 이상에는 균열을 내고 있는 작품이다.모자관계인 예수와 마리아의 각기 다른 나이를 한 작품에 모아놓았다.위대한 미켈란젤로가 그게 흠이 된다는 것을 모르고 그렇게 했을 리가 없기에 그렇게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작품의 주제가 슬픔이든,죽음이든 작가의 손에서 작품은 마술처럼 아름다운 조각으로 살아나 있다.예수의 어깨를 받치고 있는 마리아의 손이 드러난 곳에서,예수의 축 처진 팔은 그녀의 손을 덮어 밖으로 얕게 볼록하다.마리아의 손에 눌린 예수의 옆 가슴과 들려진 겨드랑이도 놀랍게 생생하다.딱딱한 대리석이라는 사실은 잊고 만다.아들의 주검을 안으려 몸을 뒤로 젖힌 것과 몸의 균형을 위해 머리를 숙인 것이 깊은 슬픔의 마리아 포즈를 완성하고 있다.뒤로 늘어진 예수의 턱 수염도 대리석 조각이라고 믿기 어렵다.골고다 언덕은 예수 왼발 아래의 나무 그루터기나 마돈나 오른쪽으로 보이는 깎인 바위에 걸터앉은 모습 속에 드러나고 있다.젊은 얼굴과 화려한 복장으로 사실성이 희생된 것은,당시의 마리아 숭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그러기에 ‘살아있는 조각가들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을 만들겠다던 야심은 당시 젊은 조각가였던 그의 이 작품에서 이미 충족되고 있었다.

예술에서 완벽을 이상으로 했던 르네상스의 최고 시대를 대표한 미켈란젤로의 여러 파격들은 우리가 보기에 훨씬 예술적이다.왕자처럼 수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다녔던 라파엘로는 고난으로 스스로를 가두는 침울한 미켈란젤로를 측은하게 여겼다.어린 시절 그림실력으로 인한 다툼에서 맞아 콧대가 부러진 얼굴이었다.평생 독신이었다.교황의 명령에도 타협이 되지 않을 만큼 고집 센 사람이었다.그런 한편 완벽함을 이상으로 하는 르네상스 최고의 시대에 그는 모든 것에 능한 진정한 ‘만능인’이었다.르네상스 발상지 피렌체의 지배자 가문 메디치가(家)에 들어가 지식과 예술을 배우며 성장했다.수많은 소네트를 지은 시인이기도 했다.조각은 말할 것도 없고 회화와 건축에서도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겼다.바티칸의 베드로 대성당에도 그의 많은 손길이 머물렀다.가운데 높이 솟은 대성당의 돔이 그의 설계대로 지어졌다.브라만테가 처음 설계한 이 대성당은 원래 르네상스식으로 사방이 같은 완벽한 비례로 설계되었었다.성당의 지붕을 하늘에서 보면 십자모양인데 르네상스 시대에는 그 십자 사방의 똑같은 길이가 이상이었다.그 길이를 바꾼 것도 미켈란젤로였다.그렇게 완전함의 시대,그 속에 파격의 힘을 불어넣을 줄 알았던 작가 미켈란젤로이기에 오늘날까지 이렇게 경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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