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더 잘자라는, 소문은 가장 오래된 미디어다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사전투표를 했다.선거일에 특별한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투표용지가 일곱 장이나 되는 이번 선거인만큼 여유 있게 하자는 마음에서였다.본투표까지 설마 별일이 있을까,하는 생각도 한몫했다.그러나 사전투표와 본투표 사이,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은 그야말로 스캔들,폭로의 쓰나미였다.기사는 시시각각 업데이트 되었고 실시간 검색어가 수시로 뒤바뀌었다.물론,북미정상회담으로 사람들의 관심도가 예전만 못하긴 했지만 말이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은 소문과 스캔들에 예민해져 있고,전문가들은 각자의 분석을 내놓았으며 네티즌들 역시 갑론을박을 펼쳤다.대형 포털 사이트는 종일 바빴고 뜨거웠다.공약이나 정책은 실종되고,의혹,증언,검증,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선거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내게,어느 한 순간 아이러니하게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과거 속의 인류가 떠올랐다.동굴 속에 모여앉아 시간을 보냈을 고대인들은 이야기를 하며 긴 밤을 보냈을 것이다.사람들은 고대인들이 말을 하면서 언어가 고도화되었고,그 과정에서 소문이 만들어졌다고 말하지만 ‘사피엔스’의 저자이자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고대인들이 뒷담화를 공유하면서 언어가 발달했다는 것이다.소문이라는 게 그토록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는 게 새삼스러웠다.

언어와 소문의 선후를 따지기는 어렵지만,소문은 사람들의 관심과 말(言)이라는 매체를 통해 지금까지 생존해왔다.예전의 소문이 전적으로 말(구전)에 의존하고 있었다면,오늘날은 말을 퍼뜨릴 수 있는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뉴스,신문,트위터,팟캐스트,유튜브까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하나의 기사는 미디어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되어 소문을 전한다.

소문은 선거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선거가 시작되면 루머,풍문,찌라시,가짜뉴스,마타도어,뒷담화 등,소문은 다양한 형태로 전해지고 전파된다.가끔 미담도 있지만,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은 스캔들이다.여배우와의 스캔들,마약,사기,부동산 투기,댓글 조작 등의 소문은 증인과 증언이 더해지면서 한 순간에 소설이 되기도 한다.하지만 그 소설은 현실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실과 허구의 경계는 희미해진다.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버린 지 오랜 시대,사람들이 기댈 건 소문밖에 없는지도 모르겠다.그래서일까? 소문을 믿지 말고 공보물을 보라고,공약을 꼼꼼하게 비교해달라는 후보자들의 바람과 부탁은,부질없게 느껴진다.

소문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과정은 복잡하지만,그것의 유통과 전파는 공감(共感)이라는 원초적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이성적인 논리보다는 감성적이고 직접적인 감정의 파편들이 소문을 비대하게 만들고,사람들을 소문의 장으로 끌어들인다.

소문은 공동체라는 숙주를 필요로 한다.소문이 확장성을 확보하지 못하면,그것은 사적인 비밀의 영역에 머무르게 된다.사적인 비밀,내밀한 이야기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답답한 일도 없다.이 답답함은 비밀이라는 씨앗이 소문으로 발아하는 자양분이 된다.

사람들은 귓속말로 전하거나,‘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던 복두장의 외침과 같은 방식을 선택하기도 한다.(SNS의 수많은 ‘대나무숲‘을 보라.) 또는 요즘 시대에 걸맞게 ‘검증’ 등의 용어를 사용하여 디지털 공간의 불특정 다수에게 폭로하기도 한다.

소문을 유통하는 입장에서 ‘검증’ ‘진실 찾기’라는 안전한 장치는 소문유포자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남의 추문을 들추어낸다는 일말의 죄의식에 면죄부를 준다.소문이 공유되는 자리가 공공연해지면 부담은 훨씬 덜어지고,소문의 유포에 부담감 없이 가담하게 된다.누군가에 대한 소문이 메인 테마가 되는 ‘풍문으로 들었쇼(show)’라는 종편 프로그램이 수년 째 이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일본의 사회학자 마츠다 미사는 소문을 ‘가장 오래된 미디어’라고 정의한다.이 오래된 미디어인 소문은,일상에서 벗어난 일이 발생했을 때 진화하고 다양해지며 전파 속도가 빨라진다.소문은 사람들의 원초적 호기심과 공동체적 불안을 먹고 급속도로 비대해진다.공동체의 미래와 연결되고,개인의 다종다양한 스토리가 있다는 점에서 선거는 소문이 자라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선거판에서 자라는 뿌리가 없는 이야기들,확정되지 않은 사실들은 오히려 사람들의 상상력이 틈입할 무한한 공간을 제공해 준다.

이번 선거에 출마했던 한 후보자,이번 선거에서 스캔들로 몸살을 앓았던 그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그의 정치적 공과도 있겠지만,상위 연관검색어에는 온통 스캔들에 관한 것뿐이었다.선거는 끝났지만 소문은 끝나지 않았다.문득 그 소문의 운명이 궁금해졌다.선거가 끝났으니,이제 그만해 달라는 충고나 부탁,혹은 고소장도 소문의 진화에는 큰 영향이 없을 듯싶다.다만,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실을 찾고 싶어 하는 인간의 또 다른 욕망의 축이 빚어내는 이야기,대중지성에 소문의 남은 운명을 맡길 수밖에 없을 것 같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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