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입을 닫아야 한다고?
춘천 미술전시공간 명동집 개최
민주화항쟁·촛불혁명 담은
황효창 작가의 전시회 '5월'
'작가는 말하지 않는다'는
오래된 룰 깬 '작가는 말' 좌담서
'해석'과 '오해'를 다시 생각한다

▲ 황효창 작 ‘삐에로의 눈물’
▲ 황효창 작 ‘삐에로의 눈물’
미술 활동에서 전시가 중요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관습은 아니다.개인적인 작가의 전시회가 미술의 역사에 자리 잡기 시작하는 것은 인상주의 시대에 이르러서였다.전통적인 살롱전이 담아내지 못하는 새로운 미술의 흐름,이름 없는 ‘무명작가전람회’가 인상주의의 시작이자 새로운 미술의 역사로 자리 잡게 되었다.이후 ‘전시회’라는 형식은 미술의 활동에서 필수적인 것이 되었다.춘천의 미술전시공간 명동집에서는 지난 5월부터 황효창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5월에 열리는 ‘5월’이라는 제목의 전시다.5월 민주화항쟁과 촛불혁명의 정신과 인형그림으로 풍자를 담고 있는 전시다.작가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 ‘오월(梧月)리’도 담았다.인형 말고도 작가는 역사적 기록으로서 리얼리즘을 담아왔다.그 맥을 잇고 있는 작품들이다.이 전시회에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마련되었다.모임에는 1980년대 민중미술의 대표작가 신학철,또 작년에 그와 박불똥과 함께 3인전을 열었던 장경호도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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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보관 중 훼손된 신학철 작 ‘모내기’
좌담 주제는 ‘작가는 말’에 관한 것이었다.작가가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술에서 자주 인용되는 경구였다.예술가의 권위를 최고로 높인 모더니즘 시대에 그것은 진리로 통했다.신과 같이 화면을 창조하는 작가가 갖는 권위는 절대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미술이 세계 미술의 중심으로 부상했을 때 이런 생각은 절정에 달했다.그 때 미술은 고고한 엘리트 의식으로 가장 미술다운 것,미술의 순수성과 같은 것을 강조했다.그림 즉 회화의 순수성은 오로지 시각적인 힘이라고 보았다.그림에 이야기가 들어가서도 안 되고 어떤 설명의 도움을 받는 것도 불순하거나 불완전한 것으로 여겼다.모든 문학적인 내용,설화나 신화적 상상력,역사나 인물,풍경은 이 순수한 미술세계에서 추방되어야 했다.아무것도 그리지 않는 순수한 그림이 그토록 강조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그래서 작가는 입으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고 믿었다.

20세기말 이후엔 달라졌을까.아직도 여전히 작가는 말하지 말 것이 강조되고 있다.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가들이 자기 작품에 직접 설명을 붙이지 않는 것인데,그런 분위기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왜일까.해석의 다양성을 열어놓기 위해서다.수많은 의미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지정한 의미만으로 제한되어 작품이 해석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긍정적 의미의 생성과 작품 의미의 확대가능성을 스스로 차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많은 사상과 논리들이 여기에 힘을 보탰다.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말한 ‘저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이 바로 이런 맥락이었다.해석을 그토록 강조하던 데리다(J. Derrida),그리고 새로운 생성으로서 해석의 중요성을 강조한 들뢰즈G. Deleuze)의 경우가 모두 그랬다.

▲ ‘황효창(사진 왼쪽 세번째) 서양화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지난 2일 춘천 명동집에서 신학철(사진 왼쪽 두번째),장경호 작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 ‘황효창(사진 왼쪽 세번째) 서양화가와 함께하는 아티스트 토크’가 지난 2일 춘천 명동집에서 신학철(사진 왼쪽 두번째),장경호 작가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됐다.

그런데 이 좌담에서 민중미술작가 신학철의 경우는 다른 예를 보여주었다.전위예술을 하던 그를 민중미술 최고 작가로 물들여 놓은 것이 소주병 속 인형그림의 황효창이었다는 사실도 일단은 반전이었다.그런데 그의 그림 중 이적찬양표현물로 탄압당한 작품 ‘모내기’는 전혀 다른 해석의 문제로 논의의 물길을 돌렸다.원래는 외세를 걷어내고 통일을 염원하는 그림이었다.그런데 여기에 엉뚱한 상상력을 해석이 더했다.이걸 아래위로 나누어 북한과 남한으로 해석해 버렸다.위쪽은 풍요와 낙원으로 묘사된 북한으로,아래쪽은 노동과 쓰레기가 가득한 남한으로 해석해 냈다.공안비평에 따라 작품은 몰수되고 작가는 결국 유죄를 선고받게 된다.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해석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적용을 위한 심각한 곡해였다.틀에서 칼로 도려내 둘둘 말아 반을 접어놓은 캔버스는 그대로 오래도록 방치되었다.이후 작가는 사면되었지만,작품의 처리에서는 여전히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몰수된 작품은 작가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쇼한다는 말이 어쩌다가 가짜로 가득한 것처럼 비쳐졌는지는 안타까운 요즘이다.잘 연출해서 보여준다는 말이지 않은가.전시회는 여전히 영어로 쇼(show)라고 옮겨지고 있다.그것은 작품을 잘 해석해 펼쳐내는 것까지를 포함하는 일이다.황효창의 전시를 보며,신학철의 경우를 보며,작품 해석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표현의 자유와 해석의 자유도 각각 지켜져야 하는 것이지만,작품과 전시와 해석을 모두 관통해야 하는 것은 역시 정의의 문제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기적처럼 남과 북이 만난 일이 일부의 눈에 쇼로 비친 일에서도 이 문제는 하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최형순미술평론가
정선에서태어나정선고·강원대를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구상전공모평론상을수상하고미술평론가로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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