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틀에 갇힌 ‘생명 존엄성’ 바라보다
대한민국 식용GMO 수입 세계 1위
완전표시제 요구 청원 20만 돌파
유전자 조작 연어 등 생물도 생산

▲ 영화 옥자 영문포스터
▲ 영화 옥자 영문포스터

대중의 관심을 표시해주는 바로미터 가운데 하나가 ‘청와대국민청원게시판’이 아닐까 싶다.

처음에는 누가 청와대 게시판에 올릴까 싶었지만,요즘은 심심치 않게 국민청원이 20만을 넘었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다.얼마 전에는 ‘GMO(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유전자변형생물)완전표시제’를 요구하는 청와대국민청원이 20만을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지난해 기준으로,우리나라가 세계1위 식용GMO 수입국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다.

GMO를 둘러싼 생태계 파괴,유전자조작,건강,통상마찰,물가상승,경제적 효용성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용어들은,이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전문가가 아닌 나는 고개를 갸웃갸웃 하며 자료를 검색하다가,얼마 전 미국 FDA가 유전자 조작 연어의 생산을 허가했다는 기사를 발견하게 되었다.살아있고 번식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연어는 LMO(Living Modified Organism)라고 할 수 있지만,유전자변형생물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일반 연어보다 네 배나 큰 연어를 들고 활짝 웃는 사람의 사진도 첨부되어 있었다.개인적으로는 조금 충격적이었다.그간의 유전자변형생물이 주로 식물이어서,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입을 뻐끔거리는 거대 연어,유전자 조작으로 탄생한 살아있는 ‘생명’을 보는 느낌은 기이했다.

유전자변형생물체(GMO,LMO)에 관련된 불안,갈등,대립,혼란 사이에 위치한 영화가 봉준호 감독의 ‘옥자’다.‘옥자’의 주인공인 유전자변형생물체 옥자는 이런 논란과 무관한 듯,해맑다.생태계에 고의적으로 가한 균열의 결과로 태어난 동물이지만,수퍼돼지 옥자는 사랑스럽다.

그런 옥자와 어렸을 때부터 자매처럼 자란 강원도 산골소녀 미자에게 유전자변형생물체 논란은 먼 나라 이야기였을 것이다.영화 ‘옥자’는 ‘적게 먹고,적게 배설하며,무엇보다 끝내주게 맛있는 육고기’로 탄생한 유전자변형생물체 옥자를 찾아오려는 미자의 모험담이다.

이 영화는 강원도에서 뉴욕에 이르는 여정에는 비윤리적 동물실험,자본주의,부패한 공권력,비정규직 문제 등으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란도 기업의 CEO 루시는 돈을 벌기 위해 비윤리적 동물실험을 하고,사람들의 거부감을 막기 위해 미디어를 활용하여 포장한다.자본으로 공권력을 움직이고,사설경호업체를 고용하여 폭력으로 사건을 해결한다.회사는 나날이 커지지만,‘비용’의 문제로 모든 직원들에게 4대보험을 제공하지는 않는다.이 거대한 고리는 원활하게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데,이 순환을 추동하는 가장 큰 힘이 자본이라는 것,이를 저지하려는 힘이 고작 미자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면 두려우면서도 애처로운 느낌이 든다.

‘옥자’의 영문 제목에도 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영문 제목은 소문자로 시작하는 ‘okja’이다.옥자는 고유명사인 동시에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수퍼돼지들,더 나아가 유전자변형생물체를 통칭하는 보통명사인 셈이다.어디 돼지뿐이겠는가? 앞으로도 다양한 종의 옥자는 계속해서 태어나고 만들어질 것이다.생태계 파괴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의 격렬한 목소리도 ‘인류의 미래’라는 구호 앞에서 빛을 잃는다.인체에 잠재적 유해성이 있는 유전자변형생물체가 식탁에 오르는 것은 반대하지만,의학이나 과학의 발전에 필요한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해서는 목소리가 작아지는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만 덜 윤리적이라거나,더 윤리적이라는 정도의 대답만이 가능할 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져 태어나야 하는 생명이 있다는 사실이 씁쓸하다.옥자를 구하겠다고 나선 미자에게 할아버지는 옥자의 사진을 부위별로 가리키며 말한다.“목살,등심,사태,삼겹살.알겄어? 이게 이놈이 타고난 팔자여.” 옥자를 죽이려는 이유를 묻는 미자의 질문에 낸시(루시의 쌍둥이 언니)는 죽은 것만 팔 수 있기 때문이라고 대답한다.낸시가 규정하는 옥자는 ‘재산’ ‘물건’ ‘상품’일 뿐이다.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인간은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사피엔스)이라고 단언했던 유발 하라리의 말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인 동물들이 물어올지도 모르겠다.‘나는 누구(Who am I)?’냐고 말이다.(요즘,동물에 ‘who’를 사용하는 빈도가 늘고 있다) 이런 상상의 질문을 던져놓고 보니,스스로도 난감하다.

스펙터클한 여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옥자가 미자에게 가만가만 귓속말을 건네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영화 내내 미자가 옥자에게 말을 걸지만,마지막 장면에서는 옥자가 미자에게 귓속말을 한다),감독이 생태계의 균열에서 만들어진 생명들과의 새로운 공존지점을 모색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묻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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