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날 사람은 꼭 만난다는 걸 믿는다구요?이젠 믿지 않을래요.오늘 당신을 만나서 이 음악을 함께 듣고 싶었어요” 1997년 개봉된 영화 ‘접속’에서 여 주인공이 전화를 통해 이렇게 말하자 그 유명한 사라 본(Sarah Vaughan)의 ‘사랑의 송가(A Lover‘s Concerto)’의 노래가 이어진다.이 곡이 흐르는 내내 화면은 두 주인공의 어긋난 만남의 과정을 담담히 그려낸다.

장윤정 감독 한석규·전도연 주연의 이 영화는 PC통신을 통해 사랑의 아픔을 가진 두 사람의 만남을 그렸다.요즘이야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 등 다양한 SNS를 통해 대화가 가능하지만,개봉 당시는 천리안,하이텔 같은 PC통신을 통해 채팅이 활발했던 시기다.하여간 영화는 상처받은 이들이 우연히 컴퓨터 통신을 통해 만나 가까워지면서 서로 위안을 받는다는 해피엔딩으로 끝을 맺는다.

만남은 각각 다른 장소,다른 시간에 있다가 같은 장소,같은 시간에 함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반드시 ‘시공(時空)’을 공유한다고 해서 만남이 이루어졌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무심코 스치는 모든 이들을 만났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진정한 만남은 ‘만남(contact)’을 통해 서로 ‘영향(effect)’을 주고 받아야 한다.그래서 만남은 시공을 넘어서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도 모른다.

소중한 만남은 또한 그저 ‘만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를 지속해 나가야 하는 노력이 전제돼야 한다.매년 칠월칠석 견우와 직녀의 만남을 위해 까마귀와 까치가 은하에 모여 ‘오작교(烏鵲橋)’를 놓은 수고가 있었기에 그 만남은 영원히 기억된다.양광모의 책 ‘만남의 지혜’에도 “만남은 인연이지만 관계는 노력”이라고 했다.노력하지 않고는 인연은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6일 남북정상이 판문점에서 ‘깜짝 만남’을 가졌다.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만남에 대해 “지난 4월의 역사적인 판문점 회담 못지않게,친구간의 평범한 일상처럼 이루어진 이번 회담에 매우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남북은 이렇게 만나야 하는 것이다”고 했다.영화 ‘접속’의 주인공들이 엇갈리는 운명속에서도 결국 만났다.남북의 만남도 그렇게 운명적으로,그러면서도 일상인 만남이 이어지길 기원한다.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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