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수 없는 증오, 수많은 언어와 감정 앞에 흔들리다
마틴 맥도나 감독 ‘쓰리 빌보드’
딸 살해범 복수 위한 엄마의 분투
사건 해결 중 경찰과 잇따라 갈등
그네 위의 대화·편지로 진심 전해
선과 악 넘나드는 인간 내면 보여

▲ 영화 쓰리 빌보드 중 한장면
▲ 영화 쓰리 빌보드 중 한장면

다양한 분야의 문화예술을 깊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유강하 교수의 대중문화평론’이 오늘부터 격주로 새롭게 연재됩니다.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바랍니다.

이 짧은 글의 제목을 정하면서 ‘본성’과 ‘마음’ 사이에서 잠시,고민했다.본성은 완고하고,마음은 유연하다고 느꼈던 걸까.그렇지 않다 하더라도,수 천 년 전부터 계속되어 온 본성에 관한 논쟁에 대해 나는 더 할 말이 없다.솔직히 고백하자면,본성이나 마음은 내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여서 대답할 말을 찾기 어렵다.이 난제에 대한 의견은 앞으로도 분분할 테고,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이 문제에 대해 말할 것이다.

마틴 맥도나 감독의 ‘쓰리 빌보드’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미주리주,에빙 지역의 외곽에 있는 세 개의 광고판’(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이다.지난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이 영화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도 일품이었지만,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조연들의 연기는 영화로의 몰입을 높인다.

이 영화를 보고 있으면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럴듯한 평가를 내리기가 쉽지 않다.내가 영화 속으로 들어가,등장인물의 하나가 된다 하더라도 나 역시 갈팡질팡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묘한 생각이 들게 하는 영화다.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선악과 피아를 구별하기 어렵다.그렇기에 악당과 영웅의 싸움인 마블 영화처럼 통쾌하게 진행되지 않는다.

경찰이 딸의 살해범을 찾는 데 소홀하다고 생각한 엄마 밀드레드(프란시스 맥도먼드)는 전 남편의 트랙터를 팔아 세 개의 대형 광고판을 임대한다.광고 문구는 꽤나 자극적이다.“죽어가면서 강간당했다” / “그런데 아직 못 잡았다고?” / “어쩔 셈인가,윌러비 서장?”
 

사람의 주목을 끌수록 사건이 쉽게 해결될 거라는 밀드레드의 말처럼,세 개의 광고판은 단번에 주민들의 관심거리가 된다.하지만 밀드레드가 노골적으로 비난한 윌라비 서장은 주민들의 인망이 두터운 사람이어서 오히려 비난은 그녀에게 쏟아진다.주민들의 민원이 들어오고,서장 윌라비가 자살하고(물론,윌라비는 광고판 때문에 자살한 것이 아니다.) 윌라비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동료 경찰 딕슨은 광고회사 직원인 웰비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가하고,누군가에 의해 광고판이 불타자 밀드레드는 경찰서에 화염병을 던진다.이쯤 되면 영화는 복수가 꼬리를 무는 진부한 스토리로 이어질 수 있겠지만,영화의 전개는 다소 예상을 빗나간다.

그 어긋남과 빗나감의 사이에는 그네 위의 대화와 편지가 있다.밀드레드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대화하지만,중요한 대화는 흔들거리는 그네 위에서 이루어진다.자신이 췌장암에 걸린 걸 알면서도 꼭 광고판을 세워야만 했냐고 묻는 윌라비의 서운함,딸의 살해범을 찾고 싶었던 밀드레드의 분노와 욕망은 서로 부딪히며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그네 위의 또 다른 대화는 영화의 후반부,밀드레드와 딕슨 사이에서 이루어진다.그네 위에 흔들거리며 앉아 대화하면서,밀드레드는 줄곧 대립하고 미워했던 딕슨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다.

그네가 부단히 흔들리는 것이라면,편지는 활자로 단단하게 고정된 텍스트라는 점에서 다르다.그러나 역설적으로 편지는 수신자의 마음을 고요하게 흔든다.

윌라비가 아내,밀드레드,딕슨에게 각각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다.“사랑해.다른 세상이 있다면 그곳에서 만나.” “그 놈을 꼭 잡길 바랍니다.기도할게요.” “넌 정말 괜찮은 사람이야.내 말을 안 믿겠지만 난 정말 그렇게 생각해.”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말이지만,이 평범함은 삶의 구체성이라는 맥락에 놓여 수신자에게 가장 내밀한 언어로 해석된다.고요한 마음의 흔들림은 영화를 예측할 수 없는 결말로 이끈다.

딸을 잃은 밀드레드가 텅 빈 도로를 달리는 장면,딕슨이 윌라비가 남긴 유언 같은 편지를 읽는 장면에는 모두 ‘여름날의 마지막 장미’(The Last Rose of Summer)가 배경음악으로 쓰였다.사건이 도무지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답답한 밀드레드,해고당한 뒤 몰래 경찰서에 들어간 딕슨의 마음은 노래의 가사처럼 ‘여름날,홀로 피어남은 마지막 장미’처럼 쓸쓸하고 황량했을 것이다.진실한 마음이 시들어버리면 누가 이 쓸쓸한 세상에서 살 수 있겠느냐고 묻는 노랫말은 다시,마음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삶은 마음과 마음이 부딪히고,마음으로 날아온 수많은 언어와 감정이 만들어내는 파문이 만들어낸 물결 같은 것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안젤라의 살해범은 아니지만,소녀강간범을 죽이러 가자는 딕슨과 그에 동조한 밀드레드는 함께 차를 타고 떠난다.그들은 강간범을 처단한다는 그들만의 정의로 가득 차 출발하지만,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흔들거린다.“딕슨,정말 괜찮겠어?” “사실 꼭 그렇지는 않아.당신은요?” 밀드레드는 마음의 부단한 흔들림을 말해주는 마지막 대사를 남긴다.“가는 길에 결정할 수 있겠지.”

다짐이든 결심이든 마음으로 쌓아올린 것들은 세워지고 무너지기를 반복한다.그건 변덕일 수도 있겠지만 가능성이기도 하다.마음은 먼지처럼,공기처럼 가볍다.그렇다고 하찮은 것은 아니다.한없이 가볍기에 오히려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유강하 교수

연세대에서 중국 고전문학(신화)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강원대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고전 다시쓰기와 문화 리텔링’ ‘아름다움 그 불멸의 이야기’ 등 10여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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