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 김교신 춘천여성민우회 활동가
최근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서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국내 만 16~44세 성관계 경험이 있는 2006명의 여성 가운데 낙태죄 폐지에 찬성한다고 응답한 이들이 77.3%였다.여성 4명 중 3명은 낙태죄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또 하나의 조사에 따르면 가임기 여성 가운데 인공 임신중절 수술 경험이 있는 여성은 19.6%로 나타났다.5명 가운데 1명이 임신중단을 경험한 것이다.이 가운데 95% 이상은 불법이다(2015년 보건복지부).

임신중단이 불법이어서 따라오는 부작용은 만만치 않다.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수술비가 비싸고,수술 자체가 음성적으로 이뤄지다보니 의료 사고가 나도 항의하기 힘들다.안전하지 않은 수술로 목숨을 잃는 여성도 있고 청소년의 경우 혼자 수술비를 벌기 위해 시간을 지체하느라 적절한 수술 시기를 놓치는 경우도 많다.

현재 OECD 35개 회원국 가운데 임산부의 요청에 따른 인공임신중절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스라엘 등 9개국뿐이다.특히나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은 낙태를 여성의 선택으로 보고 이를 허용하는 범위도 비교적 넓다.임신 10~18주까지 여성이 원하거나 보건당국의 허가를 받으면 인공임신중절이 가능하다.또 상당수의 OECD 회원국들은 인공임신중절 결정 전,의학적·사회적 상담을 진행하도록 한다.임신중단을 여성이 선택할 수 있게 하되 전문의와의 상담을 의무화하는 것이다.

한국은 임신중지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되 일부 경우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는 입법례를 취하고 있다.일단 형법 제27장 ‘낙태의 죄’는 낙태를 전적으로 금지한다.모자보건법 제14조에서는 유전적 질환이 있거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4촌 이내 친족 간의 임신 등 6가지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낙태와 관련한 법이 이렇듯 엄격하고 낙태 허용범위가 협소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 낙태율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건 왜일까?

이 문제는 흔히 생각하듯 생명권(종교)과 선택권(여성)의 대결이 아니다.국제인권법은 임신중절에 대한 접근권을 인권의 하나로 보며 낙태를 비범죄화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여성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따라서 이 문제는 여성의 건강과 재생산권 보장이라는 점에서 봐야 한다.지금 한국 여성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정부가 정말 ‘저출산 위기’를 우려한다면 현재는 거의 사문화되어 태아의 생명 보호라는 공익을 실현시키기 어려운 낙태죄 규정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여성의 성과 재생산의 권리와 양육권이 입체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정책을 정비하여야 한다.

WHO의 협력기구인 미국 구트마허연구소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낙태가 합법인 국가일수록 낙태율 감소세가 뚜렷하게 나타난다.낙태죄가 폐지되면 저출산이 심해지고 저속한 성윤리가 판칠 것이라고 단순 논리로 공격하는(배복주) 이들의 주장은 현실과 맞지 않다. 높은 낙태율과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선 좀 더 유연하고 근본적인 정책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다.낙태죄의 위헌 여부를 가리기 위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내달 24일로 예정돼 있다.헌재의 타당한 결론을 기대한다.

(낙태는 태아를 떨어뜨려 죽인다는 의미로 그 자체가 임신중지에 대한 낙인이다,따라서 형법 용어로는 낙태죄,국가 또는 타의에 의한 경우 낙태,임신중지에 대한 의료적 개입의 경우 인공임신중절,여성 자신의 의사가 포함된 경우 임신중단혹은 임신중지라는 단어가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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