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모든 것을 담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화가·조각가 역사 찾기 여행
바이칼·고구려·발해 체험 후
8월 ‘산과 함께’ 그룹 전시회
역사 속 미술인들 역할·사유
그림·조각 작품으로 공개

▲ 백두산 천지에서 펼친 유진규의 퍼포먼스
▲ 백두산 천지에서 펼친 유진규의 퍼포먼스

백두산 천지에서 펼친 유진규의 퍼포먼스.

유진규가 옛 고구려, 발해 시대에

드넓은 만주벌판을 굽어보던 천지에 올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하얀 손수건 한장이 그 행위예술에 함께 했다.

그 속에 그간의 염원, 통한의 역사를 뚫고 온 선조의 피,

저 멀리 화려한 융성기를 보여준 역사가 어찌 담기지 않을 수 있을까.

- 본문내용 중


화가,조각가들이 역사를 찾아 떠났다.역사를 눈으로 보기 위해서다.미술이 자신에 충실하지 않고 정치나 역사에 눈길을 돌리는 걸 한 때는 불순하게 여겼던 적이 있다.그런데 작가들이 그렇게 탐구하지 않았다면,드라마 대조영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어떤 역사 영화나 소설도 쓰이지 못했을 것이다.미술은 그런 의미에서 얼마든지 불순해질 필요가 있다.

20세기 대부분은 미술다운 미술로서의 순수성만을 강조했었다.그랬던 미술이 고귀한 자신만의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어버린 대표적인 장르가 퍼포먼스(performance)였다.1960년대 팝아트(Pop Art)에서 이벤트(event)라고 불리던 것이 1970년대부터 행위예술 즉 퍼포먼스라 불리며 본격화 되었다.백남준이 비디오아트를 보여주기 전에 바이올린을 몇 분 동안 아주 천천히 들어 올리다 갑자기 내리쳐 깨뜨렸던 것도,시각적 긴장과 몰입을 극대화하는 행위예술이었다.그 모두가 미술의 장르 경계 허물기의 주요 예가 되었다.

이 화가,조각가 그룹의 역사탐방에는 마임이스트 유진규도 함께 했다.유진규는 미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지 않을까.그렇다면 물을 수 있다.그가 국내 굴지의 갤러리인 인사아트센터에서 공간을 온통 어둡게 바꾸는 전시회를 연 화력(畵歷)을 들어본 일이 있는가.광화문 촛불집회 한가운데에서 여러 행위예술을 펼친 일을 알고 있는가.백남준이 음악학도로서 미학을 전공하고 나서 행위예술과 비디오아트로 세계적인 한국의 미술작가로 활동하게 되었다는 것은 또 어떤가.이렇게 미술이 경계를 허물고 더욱 넓게 많은 것을 품어내는 것은,미술 표현의 가능성과 힘을 보여주는 일이다.그 유진규가 옛 고구려,발해 시대에 드넓은 만주벌판을 굽어보던 천지에 올라 퍼포먼스를 보여줬다.하얀 손수건 한 장이 그 행위예술에 함께 했다.

▲ 발해 5경의 하나인 중경의 서고성이 있던 자리.
▲ 발해 5경의 하나인 중경의 서고성이 있던 자리.

간도와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의 연변은 같은 곳이다.그곳을 대표하는 도시 중 하나인 연길을 찾아가는 밤하늘 여객기는 오른쪽에 백두산을 두고 날았다.은은한 달빛 아래 하늘에서 보기에 중턱부터 하얀 눈으로 뒤덮인 백두산이었다.그것만으로도 그 높이와 위용을 확인하기에 충분했다.연길시에서부터는 버스로 백두산을 향했다.독립운동과 시인 윤동주로 대표되는 용정시와 발해 5경 중 중경 현덕부가 있던 화룡시를 지났다.서고성과 정효공주묘가 발해 중경을 증언하고 있는 곳이다.청산리전투를 비롯한 여러 차례 독립군전투가 펼쳐진 선봉령을 넘어 백두산 천지에 올랐다.4월의 천지는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천지 위 하얀 얼음을 지나 온 바람이 북쪽능선에 선 우리를 압도했다.호흡이 통하는 몸 속 끝까지 깊이 파고들었다.그걸 표현하는 예술에 그간의 염원,통한의 역사를 뚫고 온 선조의 피,저 멀리 화려한 융성기를 보여준 역사가 어찌 담기지 않을 수 있을까.유진규가 몸으로 기대선 바람은 그 자연과 역사 속에서 하얀 손수건을 팽팽히 날렸다.압축된 긴장이 우리 시선을 휩쓸어 담았다.예술은 자신의 순수성으로 승부할 것이 아니라 모름지기 그렇게 모든 것을 담아 마음을 울렁이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작가들의 역사탐구는 오는 8월 ‘산과 함께’ 그룹 전시회로 펼쳐질 예정이다.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발표하는 자리가 아니다.역사는 언제든 다시 쓰이는 것이지만,국정교과서와 같은 짧은 정권의 역사 해석을 강요하는 시도에 반대했던 양심과 ‘순실뎐’으로 당시의 리얼리즘을 표현해야했던 미술인들의 역할을 담는 시도의 연장선에서다.바이칼과 고구려와 발해의 융성이 펼쳐진 땅을 걸어서 탐방한 체험으로 표현한 그림과 조각이 될 것이다.중국의 동북공정과 부끄러운 사대사관에서 잊고 있거나 잃게 된 그곳을 조금이라도 더 사유 안에 담기 위해서다.그 땅으로부터 지금의 한반도로 이어 내려온 우리 예술을 담아야겠다는 전시회라면,백두대간 한가운데의 강원미술에서 더할 나위가 있는 일이겠는가.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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