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반지라는 권력 앞에 ‘ 역지사지’를 잊은 그들
‘ 미투’ 운동 속 성 범죄 가해자
절대 권력에 도덕성 부패시켜
욕망 제어 못해 스스로 파멸
장자가 논한 인간상 중 하나
역지사지·배려심 가진 상식인
'상식' 지켜지는 사회됐으면

▲ 일러스트/한규빛
▲ 일러스트/한규빛
피터 잭슨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반지의 제왕’은 판타지물이 어린이들을 주된 고객으로 삼는다는 기존의 선입견을 일거에 날려버린 히트작이었다.2001년부터 2003년까지 ‘반지원정대’ ‘두 개의 탑’ ‘왕의 귀환’ 등 총 3부작으로 상영된 ‘반지의 제왕’은 국내에서만 무려 14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세계적으로도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뒀다.게다가 작품성마저 높아 아카데미 수상만 24개 부문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영화 내용은 간단하다.세상을 어지럽히는 절대 반지를 없애려는 주인공들과 이를 막으려는 악당들의 대결 구도가 영화의 커다란 서사 구조를 이룬다.절대 반지란 먼 옛날,세상을 지배하려던 악의 군주,사우론이 운명의 산 중심부에 위치한 용암에서 만들어낸 마물(魔物).절대 반지를 손에 끼기만 하면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발휘함으로써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에 사우론을 비롯해 악의 무리와 주인공 프루도를 필두로 선한 이들이 이 반지를 차지하거나 없애고자 3부에 걸쳐 치열하게 격돌한다.이러한 가운데 프루도는 반지가 탄생한 용암 속으로 절대 반지를 던져버림으로써 세상을 분란 속에 빠뜨린 마물(魔物)을 영원히 없애버리고자 한다.

영화가 주는 색다른 감상 포인트는 이 반지를 잠시나마 손가락에 낀 사람들이 이 반지를 소유하고 싶은 강렬한 유혹에 휘말린다는 것.하지만 악의 유혹에 굴복해 이 반지를 손가락에 낀 이들은 모두 목숨을 잃고 만다.강한 정신력의 주인공인 프루도조차 이 반지를 끼고 싶다는 유혹에서 벗어나려 영화 내내 고통 받고 몸부림칠 정도로 마물(魔物)이 주는 유혹은 대단하다.

최근 들어 국내 안팎에서 거세게 불고 있는 성 범죄 피해 고백 캠페인인 ‘미투’ 운동을 보노라면 자신이 속한 분야에서 성적인 욕망을 제어하지 못하고 절대 반지를 휘두르던 이들이 결국,스스로를 파멸시켰다는 생각이 든다.미국에서는 영화계의 거물,하비 와인스틴과 원로 코미디언 빌 코스비가 용기 있는 피해자들의 미투 운동으로 성추행 및 성폭행 사건의 당사자로 지목되며 평생 쌓아올린 명예와 지위를 한꺼번에 잃었다.한국 역시,노벨 문학상의 단골 후보로 거론되며 문학상이 발표되는 시기가 오면 잠적까지 하곤 했던 고은 시인이 성추행의 당사자로 지목되며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얼마 전부터는 연극계마저 미투 운동에 동참하며 과거부터 여성들을 괴롭혀온 유명 연출가 이윤택,오태석씨를 지목함으로써 이들 모두 씻을 수 없는 오명을 남기게 됐다.

능력과 실력을 인정받으며 해당 분야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던 이들은 모두 악마,사우론의 반지를 잘못 휘둘러 자신을 망쳐버린 이들이다.절대 권력이 절대적으로 부패하듯이 절대 반지를 낀 이들 역시,영화와 현실에서 자신의 도덕성을 여지없이 부패시켰다.오히려 마법사와 거인,왕과 호걸들 속에서 초라하게 존재하던 난장이 프루도만이 성공적으로 절대 반지의 유혹에서 벗어났을 뿐이다.

그렇다면,절대 반지를 몸 가까이에 지닌 이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 상식을 지닌 상식인의 낮은 자세로 임하는 것만이 절대 반지를 부여받은 이들이 악마의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지름길이다.상식인이란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배려심을 지닌 범인(凡人)을 의미한다.하지만 절대 반지를 끼는 순간,절대 권력을 손에 쥐고 타인의 운명을 쥐락펴락할 수 있게 되기에 상식인의 몸가짐,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하겠다.“그 정도는 상식이야” 또는 “그건 상식인데도 모르나?”라고들 하지만,개인적으론 상식만큼 실행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없다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도가 사상의 태두(泰斗) 장자(莊子)는 그의 저서,‘장자’에서 상식인과 송영자,그리고 열자를 논하며 상식인의 경지를 비웃은 바 있지만 미투 운동이 거세게 불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선 상식인의 위치를 유지하는 것조차 버겁기만 하다.참고로,상식인과 송영자,그리고 열자란 장자가 자신의 우화를 통해 소개했던 인간상의 세 부류.범인에 불과한 상식인과 그 상식인을 초월한 송영자.하지만 잘난 체하는 인간만은 못마땅하게 생각한 송영자와 그 경지마저도 초월한 열자가 이들이다.

돌이켜 보면,공자가 ‘논어’에서 자주 강독했던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남성의 여성에 대한 경계였다.“여성을 탐하는 것 이상으로 부모님을 사랑하라”라든가 “여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어짊과 덕을 좋아하는 이가 드물다는 말” 등이 그것이다.그런 면에서 작금의 한국에서 벌어지는 미투 운동을 장자가 보았더라면 그가 가장 낮은 수준으로 치부했던 상식인의 처지가 얼마나 어렵고도 높은 경지인지 새삼 깨달았을 듯싶다.<끝>

>>심훈 교수의 칼럼은 이번 호를 끝으로 막을 내립니다.지난 6개월 동안 졸고를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는 심훈 교수의 말을 이 칼럼과 함께 전해드립니다.<편집자주>


심훈 교수는 196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를 역임했다.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02년부터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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