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봄이 왔다.아니,오고야 말았다.꽃이 피었으니 봄이라고?아니다.꽃이 필 때가 됐으니 봄이다.어릴적 단짝 소꿉친구의 하얀 손가락처럼 가늘고 여리게 뿌리내린 냉이의 봄.향기롭다.싱그럽다.그 봄이 산그늘을 지나 남풍에 실려 온다.긴긴 겨울밤을 풀어헤치며 허겁지겁 달려와 밥상위에 앉았다.쌉싸름한 추위가 코끝을 간질이지만 겨울은 저만치 멀어졌다.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겨울의 잔상들.그 사이를 비집고 질긴 생명이 움튼다.꽃이 피고 바람이 인다.봄이다.

겨울은 춥고 매웠다.꽁꽁 언 하늘에 날카로운 빗금을 긋던 눈발.이상문 시인은 그 하늘을 ‘산 그리는 사람은 있어도/하늘 그리는 사람은 없다/그래도 하늘은/산 위에 그려져 있다’고 썼다.겨울 뒤의 봄을 예감했을까.이성부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기다리지 않아도’ 봄은 오고야 말았으니….시인은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고 했다.‘어디 뻘밭 구석이거나/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한눈 좀 팔고,싸움도 한 판 하고/지쳐 나자빠져 있다가/…/더디게 온다’고.아무것도 미리 알 수 없지만 그 봄이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다고.

‘먼데서 이기고’ 온 올해의 봄은 특별했다.혼자만의 봄이 아닌 다국적 봄이었다.올림픽의 해,평창의 하늘아래 수 만송이의 웃음꽃을 피웠다.평화를 노래하고 자유를 꿈꾼 특별한 봄이었다.

눈밭을 녹인 복수초의 끈질긴 생명력이 오륜기로 펄럭이고,노란 꽃술에 담긴 희망은 세계인의 가슴을 뛰게했다.양지바른 산기슭에 머문 햇살 같은 따사로움으로….그래서일까.올해는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그리운 사람이 찾아와 먹지 않아도 배부른,동백꽃 붉은 열정이 폭죽처럼 터지는 그런 일들이.

강원도의 봄 평창의 봄!올림픽은 봄으로 버무려졌다.장칼국수와 감자옹심이에 냉이 달래를 넣고,봄동 메밀전을 부친 고소한 봄이었다.푸른 눈의 손님들에게 강원의 봄,평창의 비타민을 선사한 날들.얼어붙은 땅속에서 묵묵히 봄을 기다린 봄동이며 냉이,달래,방풍,돌나물이 시끌벅적한 ‘평창의 봄잔치’를 만들었다.뛰고 달리고 솟구치며 온 힘을 쏟아 부은 선수들에게 강원의 맛이 밴 평창의 봄을 전한 것이다.

‘이기고 돌아 온’ 봄처럼,모두가 승리한 올림픽의 봄.아~기어이 시작된 봄!

강병로 논설위원 brkang@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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