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세계탁구선수권·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단일팀 출전
올림픽 단일팀은 1963년부터 추진했으나 번번이 '무산'

▲ 사상 첫 탁구 남북단일팀이 성사됐던 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 때 여자 단체전 세계 제패를 합작했던 현정화와 이분희 선수.
▲ 사상 첫 탁구 남북단일팀이 성사됐던 91년 일본 지바 세계선수권 때 여자 단체전 세계 제패를 합작했던 현정화와 이분희 선수.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국제 종합대회 사상 처음이자 1991년 이후 27년 만에 남북 단일팀이 성사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우리 정부가 지난 9일 남북 고위급 회담에서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 구성을 북한에 공식적으로 제안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지난해 6월 24일 전북 무주 세계태권도선수권 개막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단일팀을 구성해 최고의 성적을 거뒀던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과 세계청소년축구대회의 영광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다시 보고 싶다"고 말한 걸 구체화한 측면이 강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같은 해 7월 방한한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도 평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남북 단일팀 구성에 협조해줄 것을 우회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에서 남북 단일팀이 이뤄진다면 국제 종합대회로는 첫 성사라는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된다.

남북체육 교류 역사에서 남북 단일팀 시도는 1964년 도쿄 하계올림픽을 1년 앞둔 1963년부터 꾸준하게 있었지만 여러 이유로 성사되지 못했다.

1963년 당시 남북은 스위스 로잔과 홍콩 등지에서 세 차례 만났지만, 단일팀 구성은 좌절됐다.

1979년에도 제35회 평양 세계탁구선수권 단일팀 구성을 위한 노력이 네 차례 있었지만 양측이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1984년 LA 올림픽 단일팀 구성 노력도 구소련 등 공산국의 불참으로 무산됐다.

안방에서 개최됐던 1988년 서울 하계올림픽을 앞두고도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협의를 3년에 걸쳐 네 차례 진행했지만, 북한이 IOC의 수정안을 거부하고 올림픽에도 끝내 불참했다.

하지만 1990년 들어 화해 무드가 조성되면서 남북이 네 차례에 걸친 만남 끝에 1991년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같은 해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 남북 단일팀인 '코리아팀'으로 출전했다.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 나선 단일팀은 남한의 현정화, 북한의 리분희 등이 주축을 이룬 여자 단체전에서 '세계 최강' 중국의 9연패를 저지하고 우승하는 기적을 창출했다. 또 그해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도 남북단일팀은 8강에 오르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남북 단일팀은 1991년 탁구와 축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남북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1년 앞둔 2007년 2월 남북체육 회담을 열어 구기 종목을 중심으로 단일팀을 파견하기로 하고, 단기와 단가, 합동훈련 방안까지 합의하고도 남북 관계 악화로 단일팀이 무산됐다.

게다가 2000년 시드니 하계올림픽을 시작으로 이어오던 개막식에서의 남북선수단 공동입장도 베이징 올림픽에서 중단됐다.

이후 남북은 2014년 인천 하계아시안게임에서 남북 단일팀을 시도했지만, 경기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포기했다.

이어 2015년 광주 하계유니버시아드에서도 남북 단일팀에 공을 들였지만, 북한의 불참으로 좌절됐다.

다시 안방에서 개최되는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이 성사되려면 우리 선수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출전 엔트리 확대 등이 따라줘야 하지만 어느 때보다 단일팀 구성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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