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에서 시작된 기원전 5세기 미술의 경이로움
고대올림픽 다져진 육체미 표출
‘원반 던지는 사람’ 히틀러 찬사
실제경기서 나올 수 없는 포즈
'창을 든 남자' 자연스러운 모습
역 S자 유려한 선 '움직임' 포착
좌·우 힘의 차이 '인체대비' 표현

평창,강릉,정선의 올림픽 맞이가 한창이다.올림픽을 평화의 제전이라고 하는 건 고대부터의 전통이다.

올림픽이 열리던 고대 그리스는 여러 도시국가들이 경쟁하고 전쟁을 하던 시대였다.올림픽 때만큼은 전쟁을 멈추고 선수들이 다 함께 모였다.고대 올림픽과 미술에서는 그리스와 나체의 운동선수를 떠올리게 된다.운동으로 다져진 육체미를 고대 올림픽에서는 그대로 드러내고 경기를 가졌다.그리스 조각상은 대체로 그런 아름다움의 최고를 보여주고 있다.이 조각상은 그리스신화의 영웅 아킬레스로 추정되지만,그런 맥락 속에서 살펴볼 수 있는 미술이다.

동계올림픽과는 좀 다르지만,올림픽을 대변하듯 등장하는 작품이 있다.미론의 ‘원반 던지는 사람’이다.고전주의 취향의 히틀러도 자국으로 가져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작품이다.하지만 실제 원반던지기에서는 나올 수 없는 포즈임이 밝혀졌다.

그에 반해 ‘창을 든 남자’에 어색함이라고는 없다.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가 이 작품을 만든 건 아득한 옛날이다.아직 대부분 청동기를 사용하던 기원전,게다가 백년의 세기를 5회 정도 더 올라갔을 때에 만들어졌던 작품이다.딱딱하게 뻣뻣한 것도 아니요,불균형하고 불안하게 서있는 것도 아니어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하다.미술의 역사에서 보자면 꼿꼿이 정면을 향해 서 있는 이집트조각에서부터 점차 한쪽 다리를 구부리고 이제 이렇게 온전히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완성된 시대를 그리스 고전기라고 한다.작가 폴리클레이토스는 비례를 미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았다.얼굴크기로 몸 전체를 나눈 팔등신과 같은 다양한 비례의 표본,지금은 남아있지 않은 그의 저술 제목이기도 했던 캐논(canon)을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지금 보고 있는 이 대리석 작품이 원작은 아니다.원작은 브론즈,즉 청동 작품이었다.그리스 시대의 청동 원작은 어떤 계기에 의해서건 거의 소멸되었다.녹일 수 있는 청동은 사람들의 손에 닿지 않아야 오랫동안 남을 수 있었다.지금도 종교적인 이유로 작품 파괴가 이루어지는 것을 본다면 오랜 역사 속에서 작품이 살아남기도 쉽지는 않음을 짐작할 수 있다.그렇게 바다에 수장되었다가 인양된 몇몇의 경우 말고 원작이 남아있지 않다.이와 같이 돌로 모각(模刻)된 덕분에 원형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이런 대리석 상을 오늘에 볼 수 있는 것은 그리스 미술에 감탄과 찬사를 쏟아내며 모방하기에 열심이었던 고대 로마인들 덕분이다.

원작이 돌 조각품이 아닌 이유는 이 사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이 작품 다리 옆에 세워진 돌기둥이나 오른 팔을 지탱하는 각목 형태의 지지대는 원작 청동상에는 없었을 것이다.돌로 만든 긴 팔은 부러지기 쉽다.육중한 돌로 된 인체를 가는 발목과 두 발이 닿는 면만으로 지탱하기도 어렵다.그러니까 거꾸로 생각하면 원작이 대리석이었다면 오른손을 그렇게 허벅지로부터 벌려 놓지 않았을 것이다.각목 같은 지지대 없이 완성도 높은 포즈를 만들기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그러니 이 작품에서 지지대는 조각재료에 따른 기술상의 찌꺼기인 셈이다.원작이 청동이었음을 말해주는 반증이 아닐 수 없다.제목처럼 왼팔에 들려있어야 할 창도 없다.가늘고 직선인 창을 연한 대리석으로 만들기는 무리였음을 보여준다.

작품에서 실제 움직임은 없지만 살아있는 것 같은 이른바 동세(movement)는 얼마든지 느낄 수 있다.역 S자로 흐르는 인체의 흐름도 있다.조각상에 중심선을 그어보자.우리가 보는 방향에서 약간 왼쪽으로 돌린 머리의 중심선은 사선으로 내려오다 가슴에서 꺾여 반대쪽으로 엉덩이를 향한다.다시 느슨하게 구부리고 약간 뒤로 놓인 다리 쪽으로 중심선은 다시 꺾여 오른쪽을 향해 내려간다.즉 전체적으로 얕은 역 S자 모양을 그리듯 서 있다.

이런 인체의 포즈는 이후 미술에서 하나의 공식이 된다.서양 미술 전체에서 이렇게 서 있는 사람의 형상은 끊임없이 반복된다.

이 유려한 선의 흐름을 만든 것이 콘트라포스토(contrapposto)다.그것은 ‘대비된다’는 뜻이다.인체의 좌우가 대비된다는 것이다.조각상을 다시 보면, 인체 오른쪽 전체는 팽팽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그래서 근육뿐만 아니라 형태도 긴장되고 수축되어 있다.어깨는 내려와 있지만 엉덩이는 오히려 올라가 있을 만큼 힘이 들어가 있다.반면 왼쪽은 그와 대비되게 모든 것이 느슨하게 늘어나 있다.올라간 어깨에도 불구하고 엉덩이는 쳐져있다.당연히 땅과의 거리가 짧아지니까 다리는 구부러질 수밖에 없다.즉 왼쪽 전체가 힘을 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올림픽의 미술 ‘원반 던지는 사람’과 동시대의 미술 ‘창을 든 남자’가 제작된 때는 기원전 5세기 중엽이다.그 옛날에 이런 완성도라니,그것만으로도 이 미술은 경이로움이 아닐 수 없다.

>>> 최형순 미술평론가

정선에서 태어나 정선고·강원대를 졸업했다.서울대 미술이론 석사,홍익대 미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등을 역임했다.1998년 구상전 공모 평론상을 수상하고 미술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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