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들은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국민을 들먹인다.무슨 약속을 할 때도 국민,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릴 때도 국민을 앞세운다.마치 국민이 죽으라면 당장 할복이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이렇게 국민을 헤프게 팔아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진정이 담기지 않았다는 자기고백처럼 들린다.국민을 그렇게 입에 달고 사는 데 하는 행동을 보면 국민의 생각과는 언제나 반대쪽으로 가는 것이 요즘의 정치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각 당의 후보들은 2018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하겠다고 약속하고 협약서에 서명까지 했다.그러나 선거가 끝나면서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해관계에 따라 입장이 돌변한다.국민의 생각이 그 사이 달라진 때문이 아닐 것이다.제1 야당 자유한국당은 지방선거 때 개헌 투표를 동시에 하면 큰 일 날 것처럼 그때와는 상반된 주장을 한다.이렇게 왔다 갔다 하게하는 배경이 있을 것이다.

지난해 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의 한 설문조사 결과는 그 실마리를 제공한다.성인남녀 1052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응답자의 87.3%가 ‘정치인들은 나라를 걱정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고 답변했다고 한다.‘그렇지 않다’는 의견은 5.3%로 극소수에 불과했다.그만큼 정치인들이 좋은 말을 하는 것은 단지 표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냉소주의가 팽배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렇게 국민을 앞장세우는 게 과연 좋은 정치인가.‘예기(禮記)’에 이 물음에 대한 명쾌한 답이 있다.천하는 다스리는데 우선 해야 할 다섯 가지가 있는데 백성은 그 속에 들어있지 않다고 말한다.그 다섯 가지란 첫째는 친족을 다스리는 것(治親),둘째는 공로에 보답하는 것(報功),셋째는 어진 이를 등용하는 것(擧賢),넷째는 유능한 자를 부리는 것(使能),다섯째는 사랑하는 것을 살피는 것(存愛)이 이에 해당한다.

정치의 요체를 말하는데 백성을 위한다는 말은 그림자도 안 보인다.이 다섯 가지를 실천한다면 백성이 부족함이 없을 것이며 넉넉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그러나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어긋남이 있으면 백성이 죽을 곳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충고한다.이 5 조목에 치세냐 난세냐가 달렸다는 것이다.할일은 안 챙기고 저 편리할 대로 국민을 이리저리 팔아먹는 오늘의 정치를 예견하고 꾸짖는 듯하다.

김상수 논설실장 ssookim@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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