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 첫사랑 첫아들’등 단어에 접두사 ‘첫’이 붙으면 설렌다.새로운 세계에 경이로운 발걸음이 입문한 까닭이다.같은 일이 반복되면 감각이 퇴색하니 첫의 감동이 있을 때 오롯이 만끽하는 경험이 소중하다.시인 박노해는 시 ‘첫 마음의 길’에서 ‘한결같은 마음은 없어라.시간과 공간 속에서 늘 달라져 온 새로와진 첫 마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절대적인 첫도 변신하고 진화된다하니 추억을 위해서라도 첫의 고비마다 자체를 즐길 필요가 있겠다.

근데 첫이 붙은 단어중 ‘첫출근 새해 첫날’같은 단어들은 감동은 물론 다짐까지 주지시킨다.이 첫 감동이 오래 이어지게 노력해야한다는 무조건적 반응에 가까운 결의이자 다짐이다.감동에 책임감을 떠올린다는 것은 우리가 성취지향적인 삶에 익숙해있다는 증거이다.마치 좋은 사람 콤플렉스에 빠져있기나 한 것 처럼 더 잘해야지등의 다짐이 습관처럼 나오는 데 이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어떤 상황에서든 노력하며 살아야한다는 것에 길들여진 징표이기 때문이다.나도 새해 첫 칼럼을 쓰면서 앞으로 더 좋은 칼럼쓸 각오를 한다.

생각해보니 가끔은 삶에 ‘그냥’도 필요하다싶다.그냥의 뜻은 있는 그대로 혹은 아무 생각 또는 조건없이이다.자살한 샤이니의 종현이 누나에게 보낸 글에는 ‘그냥 수고했다 이만하면 잘했다 말해줘’가 있다한다.원태연 의 시 ‘그냥 좋은 것’에는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중략)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가 나온다.그냥의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는 이 시는 바보같은 순진무구함에 대한 찬미이다.그냥의 뉘앙스는 위로감이나 포근함으로 감싸안아주는 따뜻함이다.

작년 베스트셀러 책중 의사 김승섭이 쓴 ‘아픔이 길이 되려면’이 있다.질병의 사회적원인을 찾아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바꾸는 역학에 초점을 맞춘 책으로 건강한 사회만들기를 강조한다.정치도 국민도 사회도 분노로 날이 서있지만 가끔은 따지지 않는 그냥의 미덕과 아량이 있었으면 좋겠다.큰 지혜는 어리석은 것처럼 보인다는 대지약우(大智若愚)의 마음으로 넉넉해서 행복한 한해 만들기를 소망한다.

조미현 기획출판부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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