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책임자 ‘처벌’보다 ‘극복’ 우선시 한 360년 전의 혜안
1657년 일본 에도의 한 절
소녀 영혼 달래는 의식중 불
땅 75% 불타고 11만명 사망

한때,세계 최고의 화재 왕국은 일본이었다.‘일본재이지’(日本災異志)라는 책을 저술한 오카지마 하타쓰에 따르면 고대 이래 1865년까지 발생한 열도의 화재 중 역사적인 대형 화재만 1463건에 달한다.하타쓰는 게이초(慶長)란 연호를 쓰기 시작한 1590년대 이후부터 따져 보아도 비극적인 대형 화재는 779차례나 발생했다고 덧붙이고 있다.

그런 화재의 왕국,일본에서도 최악의 재난 장소로 꼽힌 곳은 도쿠가와 막부의 수도인 에도,즉 지금의 도쿄였다.실제로 근대의 에도사(江戶史)는 화재사(火災史)나 다름없었다.오죽했으면 ‘화재와 싸움은 에도의 꽃’이라는 속담까지 생겨났을까? 안타까운 사실은 에도가 단순히 화재 사건의 발생 수에 있어서만 최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규모에 있어서도 지금의 일본을 연상하기 어려운 초대형 화재가 발생했던 까닭에서다.

1657년 초봄의 도쿄는 매우 건조한 상태였다.무려 3개월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은 가운데 바람마저 심하게 불어 스산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마침,에도 북쪽에 위치한 혼묘지(本妙寺)라는 절에서 한 소녀의 영혼을 달래는 의식이 실시됐다.상사병에 걸려 죽은 소녀의 옷을 불에 태우고 넋을 위로하는 의식이었다.하지만 불에 던져 넣은 소녀의 옷은 갑자기 불어닥친 돌풍에 하늘로 솟구치더니 절의 본당 지붕 위에 날아 앉았다.이후 본당에 붙은 불은 거센 바람을 타고 순식간에 옆 건물로 옮겨 붙으며 결국,에도의 대부분을 태워버리는 최악의 참사를 낳고 만다.훗날 메이레키(明曆) 대화재로 불린 대재앙이었다.에도의 피해가 얼마나 컸던지,항간에서는 도시 재정비를 꿈꾸는 에도 막부가 일부러 불을 놓았다는 음모설마저 돌았다.이 화재로 1만석 이상의 농토 500개가 불에 탔으며 무려 10만7046명의 사망자가 발생해 열도에 씻을 수 없는 비극을 안겨 주었다.

에도의 75%가 불타버린 수도의 중건을 맡은 책임자는 도쿠가와 가문의 실력자인 호시나 마사유키였다.에도 재건에 총력을 기울였던 그는 메이레키 대화재 때 불타버린 에도성의 천수각도 다시 세우지 않았다.“건물 세울 돈이 있으면 난민에게 식량을 주라”며 백성들의 고충을 보듬는데 앞장섰기 때문이었다.일본 성의 중심을 이루는 건축물로 망루를 겸하고 있는 천수각이 오사카 성을 비롯해 히메지(姬路城),쿠마모토(熊本) 성에는 온전히 있는 반면,도쿄의 황궁에는 지금껏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면 이번 주의 칼럼에서는 난데없이 메이레키 대화재에 대한 이야기로 장광설을 늘어 놓았을까? 이유는 에도의 중건을 맡았던 호시노 마사유키가 혼묘지의 스님을 처벌하기보다 도시 재건설을 최우선 당면 과제로 내세우며 일 처리의 전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당시 “갖추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불가(不可)하다”라던 그의 발언은 지금껏 일본 사회에서 명언으로 남아있다.사건이 터지면 먼저 유관 책임자를 색출해 처벌하자고 아우성치는 것이 지금까지 당연시되는 한국적 풍토에 비춰볼 때 시스템과 매뉴얼의 마련을 먼저 강조한 시대의 혜안이었다고나 할까?

그렇다면 도쿠가와 막부에서는 메이레키 대화재 이후에 어떤 변화를 선보였을까? 먼저 막부는 에도 곳곳에 ‘호리와리’라는 이름의 수로를 건설하고,화재가 번지지 못하도록 방화용 제방과 함께 ‘히로코오지’,‘히요케치’라 불리는 여러 종류의 방화 공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이러한 흔적은 지금까지도 전해지고 있어 도쿄 우에노 지구에는 ‘우에노 히로코오지’란 지명이 남아 있을 정도다.에도 막부는 또 화재 감시탑의 설치를 의무화하면서 초기에 화재를 발견하고 진압할 수 있도록 소방 시스템을 더욱 개선하기에 이른다.

민가의 방재 노력 역시,막부와 병행해서 꾸준히 진화해 갔다.화기가 쉽게 침입하지 못하도록 문과 창의 틈새를 흙이나 회반죽으로 바르는 ‘메누리’ 공사가 선보이기 시작했으며 지붕 위에는 넓고 커다란 빗물받이가 설치돼 소화 노력을 배가시킨다.더불어,소방용 물을 담은 커다란 드럼통들이 마을 곳곳에 피라미드처럼 쌓여,언제든 진화에 동원될 수 있도록 의무적으로 설치된다.

2017년 세모에 발생한 제천 참사가 소방 시스템의 체계적인 구축과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의 개선,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 모두를 가능케 할 예산 확충으로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소방 안전 점검을 스스로 행하지도 못하고 불법 주차로 소방차 진입이 방해를 받는 상황에서 부족한 인력으로 고장난 장비를 들고 인명을 구조하며 화재 진압에 나서는 이들이 대한민국의 소방대원들이다.불법을 저지른 이들은 응당 법의 심판을 받아야겠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한 이들은 오히려 박수 받아 마땅하다.그런 의미에서 행정안전부 장관의 사퇴와 소방방재청장의 파면,그리고 소방대원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부르짖는 일부 목소리는 360년 전의 호시노 마사유키를 떠올리게 한다.“갖추지 않고 처벌하는 것은 불가하다.”



심훈 교수는 1968년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세계일보 기자를 역임했다.미국 아이오와 주립대 매스커뮤니케이션 석사,미국 텍사스 주립대 저널리즘 박사학위를 받고 지난 2002년부터 한림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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