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옛길
해발 865m 추위 속에도 겨울마니아들 발걸음 이어져
금강송숲 지나 반정 쉼터서 동해 조망 겨울 최고 호사

서울∼강릉(경강선) KTX 고속열차를 타고 대관령 옛길로 가는 ‘설국열차’에 올라보자.아흔아홉번의 굽이마다 다양한 겨울풍광이 우리를 맞아준다. 어디 풍경뿐일까. 사람사는 이야기,역사·문화의 향기가 가득하다.

용틀임하듯 이어지는 고갯마루가 또 은세상이다.산 아래 동해안 바닷가에는 아직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았지만,고갯마루는 어느새 온통 설국(雪國),별천지다.해마다 고갯길을 찾아오는 이 겨울진객은 겨우내 켜켜이 쌓여 내년 봄,진달래가 요란하게 피어나기 전까지는 이 고갯마루의 주인 노릇을 할 터이다.

‘겨울왕국∼대관령’이 또 그렇게 역동의 호시절을 맞고 있다.남들은 깊은 겨울 잠에 빠져드는 동면의 계절이지만,대관령은 우리나라 고갯길의 대명사답게 한겨울에도 에너지가 넘친다.동장군이 아무리 위세를 떨쳐도 대관령에는 설산(雪山)의 맹추위를 즐기려는 겨울 마니아들의 발길이 쉼없이 이어진다.

해발 865m,아흔아홉굽이 고갯길을 사람들은 ‘옛길’이라고 부른다.사람들은 대관령 고갯길의 겨울 나신이 만들어내는 눈부신 풍광에 열광하고,그곳 옛길에서 누천년 곰삭아온 인간사 스토리와 역사·문화의 향기에 감동한다.

하얀 눈을 갑옷처럼 두르고 도열하듯 늘어선 금강송 솔숲을 지나 옛길 ‘반정’의 쉼터에서 동해바다를 굽어보는 삶의 여유를 대관령이 아니고 또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그 옛날 고갯길을 넘어 한양으로 떠나던 신사임당이 멀리 북촌(北村)을 돌아보며 읊은 사친시(思親詩)의 애틋한 정이 잠든 감성을 일깨우고,조선의 대표적 화원인 김홍도가 고갯길의 아름다움에 반해 남긴 산수화 한폭을 감상하는 즐거움은 깊은 산속에서 만나는 최고의 호사다.백성들이 험산준령 고갯길을 넘으면서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사재(私財)를 들여 넓은 길을 만들었다가 병자호란 때 오랑캐가 침입하는 길이 됐다는 이유로 홍역을 치른 관찰사 고형산 이야기,대관령을 넘다가 얼어 죽거나 호환(虎患)을 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기자 주막을 짓고,나그네들에게 침식을 제공한 기관(記官) 이병화 이야기는 마치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귀를 세우게 한다.

옛길 정상에서 대관령 국사성황당을 만나는 감흥 또한 오랜 여운을 남긴다.국사성황당과 산신각은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이면서 유네스코가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해놓고 있는 ‘천년 축제∼강릉 단오제’가 매년 시작되는 곳 이기도 하니 그 존재와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

올 겨울에는 서울∼강릉(경강선) KTX 고속열차 개통(12월 22일)까지 예정돼 있으니 강릉여행이 더 편해진다.KTX 는 대관령 장대터널(21.7㎞)을 5분여 만에 쏜살같이 지나간다.문명의 이기 KTX를 타고 대관령을 지하로 관통한 뒤 다시 아흔아홉굽이 옛길에서 발품을 파는 즐거움,그냥 생각만으로도 흥분된다. 최동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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