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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부 산문 대상] 가족

2017년 10월 13일(금)     허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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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서 경기 고양예고 2년

훌쩍.컹.훌쩍.컹.거실에서 누군가 코를 먹고 있었다.컹컹.훌쩍.훌쩍.그저 꿈인가보다 했지만 소리는 점점 커졌고 멈출 줄 몰랐다.컹.컹.훌쩍.꿈이 아니야.눈이 번쩍 뜨였다.나는 조심스레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아니나 다를까,쇼파엔 아빠가 앉아있었고 텔레비전에선 남녀의 이별장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다소곳하게 세운 무릎 위로 듬성듬성 보이는 굵은 털.더욱 충격적인 건 무릎에 끼여 있는 굵은 손깍지였다.자칭 대항건아.저게 건장한 사나이.우리 아빠라니.나는 눈살을 찌푸렸다.내가 나온 걸 아는지 모르는지 아빠는 계속해서 코를 훌쩍이고 있었다.

“아빠!”

나는 성급하게 아빠를 불렀다.아빠는 화들짝 놀라며 급히 눈물을 닦았다.“너,넌 소리도 없이 나오냐!”

딸에게 눈물을 들키다니.그것도 아침드라마를 보다가.아빠는 멋쩍은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나는 아빠의 큰소리에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졌다.결국 악담을 퍼붓고 말았다.오십 넘어서 주책맞게 무슨 눈물이냐고.아홉 시의 태양이 거실로 들어왔다.동시에 안방에서 엄마가 나왔다.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아빠의 눈물을 비웃었다.

그 날을 시작으로 아빠는 점점 여자가 되어갔다.쩍 벌어졌던 다리는 오므라들었고,꾹 다물고 있었던 입은 시도 때도 없이 열렸다.시답지 않은 드라마 얘기에서부터 알고 싶지 않은 친구들 이야기까지,아빠의 입은 종일 내내 닫힐 줄 몰랐다.그 덕에 잔소리는 더욱 늘어갔고 아빠와의 잦은 싸움은 서로를 지치게 만들었다.아빠는 오십병이 분명했다.오십이 넘어가면서부터 성별이 바뀌기 시작한다는 오십병.중이병과 견줄 만큼 아주 고약하고 이상했다.

모처럼의 외식을 하고 광장을 걸어오는 길이었다.광장 한쪽에선 유기견 입양 단체가 구호를 외치고 있었고 우리 가족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아빠는 쇠 철장 속에서 떨고 있는 강아지 할 마리를 유심히 살폈다.꽤 오랫동안 강아지를 지켜보던 아빠의 두 눈이 아련하게 반짝였다.엄마는 아빠의 눈물을 믿을 수 없다는 듯, “지금 니네 아빠 개 때문에 우는 거니?”라고 몇 번을 되물었다.아빠는 코를 훌쩍대며 강아지를 입양하자고 말했다.엄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발길을 돌렸고 나 또한 그랬다.그날 아빠는 밤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철장 속 강아지를 품에 안은 채.

엄마는 다음날 이 사실을 알게 되었다.아침부터 큰 소리가 오갔고,엄마 아빠는 서로의 가슴에 총을 쏘고 있었다.나는 자연스럽게 엄마와 한패가 되었다.나는 엄마의 심장에 꽂힌 총알을 빼주었고 아빠의 총알은 더욱 세게 눌러주었다.역시나 엄마의 승리였다.끝끝내 아빠와 강아지는 밖으로 쫓겨났다.

나날이 심해져가는 병세에 엄마는 아빠에게 매일같이 소리쳤다.남성호르몬 주사를 맞지 않으면 이혼하겠다고.또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결국 엄마는 자신에게 극단의 조치를 내렸다.첫째,아빠가 하는 모든 행동에 반응하지 말 것.둘째,아빠의 감정변화에 관심을 보이지 말 것.셋째,아빠가 하는 그 어떤 이야기에도 대꾸하지 말 것.그냥 한마디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엄마의 극단조치가 시작되고 나서부터 우리 집은 우중충한 먹구름으로 가득찼다.특히 엄마와 아빠가 함께 집 안에 있을 땐 비가 내렸고,심하면 천둥번개까지 내리쳤다.나는 뒤숭숭하고 을씨년스러운 공기 속에서 간신히 숨을 내쉬고 있었다.엄마의 극단조치는 아빠에게 너무 가혹했다.

햇빛을 삼켜버린 먹구름은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상황은 심각했다.나는 최대한 아빠를 이해해보려고 애썼다.어쩌다 우리 아빠가,든든했던 우리 아빠가,말 많고 마음 여린 감성소녀가 되어버렸을까.강아지 사건 이후로 내내 엄마에게 핍박 받던 아빠의 모습이 자꾸만 생각났다.엄마의 멸시와 괄시에 우울해 하는 아빠의 모습이 그려져 마음이 찌릿찌릿했다.나는 생각했다.내가 엄마가 아닌 아빠의 가슴에 꽂힌 총알을 빼 준 것 있었나 하고.없다.한번도 없었다.빼주긴 커녕 오히려 총을 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집의 햇빛을 되찾기 위하여 오십병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기 시작했다.초록 창에 올렸던 고민 글에 답변이 달렸다.

‘아버지께서 오십병을 심하게 앓고 계시군요.오십병은 남성호르몬 주사를 맞거나 약을 먹지 않는 이상 예전의 사나이다운 모습으로 되돌아가긴 어렵습니다.게다가 스스로가 오십병에 대해 부정하고 인지하지 못한다면 약물복용은 불가능하다고 보죠.하지만 주변의 도움으로 어느 정도 개선은 가능합니다.여성스러워진 아버지가 낯설고 어색하더라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배려하고 격려해야 해요.자칫 우울증으로 번질 위험이 크니 가족 모두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토요일 열두시.해는 중천에 떠 있는데 우리 집은 어두컴컴했다.늘 그렇듯 아빠는 쇼파에 앉아 다소곳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나는 조심스럽게 아빠 옆에 앉았다.아빠는 그런 나를 의아하게 바라보았다.

“용돈…필요하니?” 아빠가 조용히 물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선뜻 말이 나오지 않았다.드라마 같이 보자는 말이 뭐 그리도 어려울까.그래도 용기를 냈다.내가 먼저 용기를 내야하는 게 맞으니까.

“나도 이 드라마 보고 싶어서!아빠랑 같이 보려고 나왔지.”

내 말을 들은 아빠의 표정이 순식간에 밝아졌다.동시에 먹구름이 햇빛을 토해냈고 날이 개였다.

뭐든 시작이 어렵지,아빠와 나는 말이 잘 통했다.가지런히 모여 있는 아빠의 모습이 이젠 그저 웃겼다.엄마는 갑자기 친해진 나와 아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해 했다.하지만 엄마도 차차 마음의 문을 열었고 지난날의 자신을 반성했다.우리는 아빠의 마음속에 살고 있던 감성소녀와 친구가 되었다.

“아빠,그때 그 강아지는?”

“보호소로 돌려보냈지.왜,제대로 키워 볼까?”

“여보,왜이래 또!”

한 발짝만 먼저 다가가면 해결되는 문제였는걸.등잔 밑이 어두웠다.최고의 약은 가장 가까이에 있었다.가족은 만병통치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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