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경순   홀트강원후원회장
▲ 이경순
홀트강원후원회장
지역의 규모가 작든 크든,사회가 다변화되고 이런저런 단체가 많아질수록,지역마다 단체마다, 한 역할을 하는 ‘그 시절의 리더’들도 많아지고 있다.이른 바,지역사회의 원로(元老·어떤 분야에 오래 종사하여 나이와 공로가 많고 덕망이 높은 사람)요,각종 단체의 고문(顧問·어떤 분야에 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제시하는 직책)들이다.조직이나 지역이 제대로 움직이는데 원로와 고문의 경험과 경륜은 큰 도움이 되고 덕망과 경륜을 갖춘 고문,원로들의 말과 행동은 구성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원로나 고문들의 바른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로 눈을 돌릴 때 과연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고문과 원로가 많지 않은 것은 아닌가,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흔히 통치의 덕목을 얘기할 때 드는 ‘덕위상제(德威相濟)’를 말한다.덕은 위엄으로 건져지고 그 위엄은 덕으로 건져진다는….즉,덕과 위엄이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곱씹을수록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면서 고문과 원로의 바른 역할도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덕과 위엄이 갗추어진,고문이나 원로는 가만히 있어도 조직이나 지역사회에 어려운 현안문제가 생기면 저절로 찾아가 고견을 듣고 싶어지는,그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정작 현실에서는 그렇기보다 언제든,어디서든,인정받고 대접을 받아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되면 못마땅한 마음을 드러내고 질타해 주변을 불편하게 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설사 후배들이 자신들이 이루어놓은 업적이나 성과를 잘 몰라서 범할 수도 있는 현안의 본질과는 무관한 말이나 행동에 날을 세우고 ‘대접’만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오히려 갈등 국면이 있을 때 중재 역할을 한다면서 문제를 더 꼬이고 해결할 수 없는 난맥상으로 치닫게 하는가 하면,단체를 대표해 관청을 방문했을 때,자신의 이익과 연관된 민원성 문제를 제기하는 황당한 경우도 보았다.

인생사,생각하면 아무리 소 귀에 경을 읽어도 그 시절을 겪어야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부모들이 ‘너도 자식을 키워봐라’ 수없이 되뇌이건만,그 자식은 자신이 부모가 되어야만 비로소 알아지는 게 세상이치 아니던가.조직과 사회 문제도 그렇다.조직과 지역의 리더들도 겪어봐야만 선험자들의 고충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세상일 일 테니,적절한 기회에,적절한 형태로 자신의 경험에서 녹아나온 엑기스를 전해주는 것이 진정한 고문과 원로의 역할이라고 생각된다.고문과 원로들이 구성원들의 든든한 정신적 지주로서 버팀목 역할을 할 때,대접만 받기를 원하기보다는 따뜻한 격려와 고무로 후배들의 의욕을 샘솟게 할 때,지역사회와 조직,단체의 건강성이 확보되고 튼튼해질 것이라고 확신한다.그런 고문, 그런 진정한 원로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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