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여우가 길을 가다 포도밭을 발견했다.허기를 면하기 위해 포도밭에 들어갔지만,포도송이가 너무 높이 달려 있어 손이 닿지 않았다.여우는 어떻게든 포도송이를 따보려고 뛰어봤지만,모두 헛일이었다.마침내 완전히 지친 여우는 외쳤다.“저것은 신포도가 분명해.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남아 있을리가 없어” 자기합리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는 이솝우화의 ‘여우와 신포도’얘기다.

심리학에서는 이같은 자기합리화 심리를 두고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으로 이해하고 있다.인간은 본성적으로 세상을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는 이익에 따라 유리하게 보려는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잘못을 저질렀을 때도 붕괴되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방어기제가 작동된다고 한다.이중잣대를 통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자신을 합리화하는 것도 같은 이치다.

최근 유행하는 ‘내로남불’은 자기합리화,이중잣대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포털의 국어사전 검색에서도 ‘내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라며 ‘1990년대부터 정치권에서 유래한 뒤 현재까지도 오프라인과 온라인 상에서 모두 쓰이는 말’이라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여 있을 정도로 대중화 되어 있다.그리고 20년이 흐른 지금,내로남불은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가 됐다.

내로남불이라는 말은 주로 공동체의 가치기준이 바로서지 못했을 때 등장한다.공동체보다는 내가 우선인 사회,공동체 구성원이 공감할 수 있는 가치기준이 없을 때,개인 각자들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불리한 점에 대해 방어기제를 발동시키면서 자신에게는 관대한 경향을 드러낸다.이어 도덕성마저 약화된다.이러한 현상이 심화되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문제를 불러온다.

합리적 판단이 필요함에도 진영논리에 빠져 극단적 대립을 불러오는 상황도 이와 무관치 않다.또한 공동체 합의과정의 투명성과 그 결과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그 사회의 민주적 역량과도 직결되는 문제다.민주적 질서를 갖춘 공정한 사회를 이루려는 공동체 구성원의 인식부재와 훈련부족이 이러한 합의를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9년 여만의 정권교체는 ‘내로남불’ 논란을 재등장시켰다.아직 우리가 성숙한 민주사회에 이르지 못했음을 의미하는 것 아니겠는가.

천남수 사회조사연구소장 chonns@kado.net
저작권자 © 강원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